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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월광곡

미국에서 막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민영우는 이미 조교수 자리를 약속받은 백학여대에서 아주 가까운 곳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 호텔 로비엔 아늑한 다실이 있는데 의자들이 다 명품 안락의자여서 밖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보고 돌아온 손님들은 으레 거기 앉아서 편안하게 쉬며 차도 마시고 조용한 음악도 들으며 피로를 풀었다. 민영우도 물론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후 늦게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아가씨가 다른 아가씨들보다 좀 다른 데가 있어 유심히 지켜보았다. 옷도 야하지 않게 입고 립스틱도 바르지 않고 손님들의 농담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깔깔대고 웃는 일도 없었다. 오뚝한 코를 치켜들고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오만스럽게 걷는 모습이 꽤 자존심이 강한 아가씨로 보였다. 한 달쯤 지난 후 하루는 영우가 물었다. “아가씨 이름은?” “왜요?” 뜻밖의 반문에 민영우는 좀 당황했다. “그냥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명주라고 부르세요.” 윤명주는 이 귀티가 나는 젊은이가 다 좋은데 타임지를 둘둘 말아 쥐고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유치하고 싼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대개 영어 못하는 젊은이들이 여자들한테 눈길을 끌어보려고 영어를 잘 하는 척 겉멋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 그 타임지를 펴고 읽고 있는 민영우에게 물었다. “그 잡지 재밌어요?” “예?”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계속 읽어 나갔다. “정말 그 어려운 영어를 다 이해하시느냐고요?” “아니, 그냥 읽는 척하는 거죠.” 그렇게 건성으로 답을 주고는 이 당돌한 아가씨를 어떻게 대해야되나 하며 다실을 나왔다. 그 다음날 명주는 영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건 왜요?” “그냥,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요. 사장님?” “사장 아닙니다. 그냥 미스터 민이라고 부르세요. 그런데 명주 씨는 왜 낮에 일 하지 힘들게 밤에 일하죠?” “명주씨가 뭐에요. 촌스럽게. 다른 손님들은 다 아가씨 아니면 아가라고 부르는데. 제가 대학생 알바란 걸 전혀 몰랐어요? 다른 손님들은 말 안 해도 다 알고 학생이라고 부르며 학비에 보태 쓰라고 돈도 주고 그러는데.” 명주는 영우가 이 호텔에 들어와서 한 달이 지나도록 말 한마디 안 걸고 차 한 잔에 잡지만 읽고 있는 이 젊은 남자가 좀 못 마땅하면서도 그의 정체가 뭘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손님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세태에 물들지 않은 좀 맹한 선비같이 보이기도 했다. 얼마 후 민영우는 대학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구해 혼자 사는 고모를 데려다 놓고 호텔을 나와 그리로 거처를 옮겼다.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어 그는 처음으로 영문학과 이학년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들의 질문은 끊일 줄 몰랐다. 서른도 채 안돼 보이는 이 귀골냄새가 풍기는 풋내기 교수한테 여대생들이 갖는 호기심은 대단했다. 우선 미국 명문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선배 교수의 추천으로 이 대학에 오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학생들은 좀 의외라는 표정으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교수님 결혼 하셨어요?” 귀에 익은 목소리인 듯싶어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학생은 바로 그 당돌한 명주였다. “그런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 귀중한 수업시간을 아껴 써야지요. 이번 학기에 내가 다룰 작품은 과정표에 나와 있는 대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지요? 우선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타임지를 들고 다닌다고 흉을 봤던 그 호텔 손님이 영문학 박사 교수님인 걸 알고부터 민영우에 대한 명주의 관심은 각별했다. 한 달이 좀 지났다. 명주는 민영우 교수실에 찾아가서 집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건 왜?” “집에서 공부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을 찾아가려고요.” 민영우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이 학생은 정말 골치 덩어리라는 생각을 하며 우물거리는데. “선생님 댁에 학생이 공부 때문에 찾아가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어요? 선생님, 혹시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것 아녜요?" “아니 아냐, 물론 그건 아니지. 그래, 그래 언제든지 찾아와. 이게 우리 집 주소야. 여기서 아주 가까워요.”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명주는 귀티나는 젊은이가 말아쥔 타임지가 거슬렸다 영우는 강의중 결혼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황했지만 손님-종업원 관계서 교수-학생 신분으로 변한 현실에 미묘한 감정… 일요일 아침이었다. 명주는 눈을 뜨자 두 손으로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아주 만족해했다. 아침 샤워를 하고 체경에 몸을 비추어봤다. 그 가냘프던 어깨에 보기 좋게 살이 붙어있었다. 뒤를 보니 히프에도 물이 잔뜩 올라 있었다. ‘아 이젠 됐다. 난 이미 대학생이고 나이로도 성인이다. 몸도 이제 완전히 성숙했다. 내가 남자의 사랑을 못 받을 아무런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원래 살이 안찌는 체질이어서 늘 친구들의 둥근 어깨나 툭 튀어나온 젖가슴이나 푸짐한 히프를 볼 때 마다 기가 죽었었는데 이젠 자신의 몸매가 그들보다 더 섹시하다고 생각되어 처음으로 몸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봤다. 그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등학교 일학년 때의 일을 회상했다. 영어 선생이 너무 좋아서 혼자 몰래 사모하며 애를 태우다가 하루는 영작 시험시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시험지 후면에 연애편지를 써서 제출했다. 물론 명주는 교무실 복도에 꿇어앉아 벌을 받았다. “머리에 아직 피도 안 마른 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하면서 “사제지간에 부적절한 관계로 얽히면 너도 나도 이 학교에서 쫓겨난단 말이다. 그만한 교칙은 알고 있어야지.” 그때도 명주는 몸이 너무 가냘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가 내놓고 연애하자고 했나, 남 몰래 만나면 되는 거지’ 하며 속으로 교칙이니 사제지간이니 하는 선생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민영우를 떠올렸다. 호텔에서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바보처럼 순진해 보이는 그가 명주의 관심을 사로잡았었다. 이젠 민영우한테 사랑을 고백해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 소리는 안 듣겠지 하며 그를 찍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며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한 두 시간 늘어지게 아침잠을 자고나서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그녀가 과외 지도하는 학생들의 집을 향해 걸어 나갔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호텔 일은 그만 두고 방과 후와 주말에 열심히 고등학생 과외수업을 지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세 번째 학생의 과외수업을 마쳤을 때는 저녁이었다. 집에 와서 적당히 저녁을 차려먹고 미리 사다놓은 타임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민 교수 명함을 들여다보며 그가 사는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안에 들어서니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거실로 안내했다. “사모님은 안 계세요?”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무슨 사모님은?” “네? 총각 교수님이셨군요.” 민영우가 모습을 나타내면서 “공부하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었어?” 하면서 “우선 여기 와 앉지.” 두 사람이 거실 탁자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네, 여기 이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하면서 이번 주에 막 새로 나온 타임지를 들고 와서 펼쳐놓고 미리 밑줄 친 부분을 가리켰다. 한 시간 반쯤 공부를 하고 명주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되는데 하면서. 민영우는 의외로 그녀가 꽤 실력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문제 학생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다음 주 일요일에도 명주는 또 찾아갔다. 이번엔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한 십오 분쯤 공부하고 난 뒤에 ‘과외수업비도 안내고 이렇게 과외 공부하는 것 부담이 된다’고 하며 학교 공부는 자신 있으니 다른 얘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얘기 뭐?” “선생님은 제가 정말 공부하러 찾아오는 줄 알았어요?” “물론이지.” “선생님은 외계인이세요? 왜 그렇게 순진하세요?” “?” “저는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좀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오기 시작한 거였어요.” “학생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호텔에선 손님과 종업원 사이였지만 지금은 달라. 우린 교수와 학생 사이야.” “그게 무슨 상관에요? 우린 둘 다 성인이고 성인끼리는 법적으로 결혼할 권리까지 보장받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난 학자일 뿐이고 여자에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야.” “그건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생각이에요. 제가 앞으로 선생님이 여자한테 관심을 갖도록 만들 거예요.” “어떻게?” “그건 이제 두고 보면 아시게 될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미혼인 건 이미 알았고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그건 왜?” “학생이 자기가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 아녜요?” “그렇지만 필요 이상의 호기심은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야.” “선생님, 그럼 우리 인터뷰 놀이해요. 제가 먼저 삼십분 질문을 드릴 테니 그 다음엔 선생님이 기자가 되는 거예요.” 아무튼 이리하여 명주는 민영우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해소되자 일어섰다. “선생님, 아직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다음주에 또 계속해요.” 명주는 영우가 온양에서 멀지않은 어느 해변 마을에 사는 꽤 부유한 명문 대갓집의 장손으로 외아들이란 걸 알았고 책밖에 모르고 자라난 말 그대로 귀공자란 걸 알았다. 별로 놀랄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 같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영우는 명주가 고아란 걸 알고는 놀랐다. 전혀 자기의 추측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명주는 엄마도 아빠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명주는 보육원에서 너무 까불고 개구쟁이여서 주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집도 세고 선생님한테 잘 대들고 너무 조숙해서 엉뚱한 짓도 자주 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서 한 번도 일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어서 우쭐대며 지내다가 초등학교 사 학년 때에야 비로소 보육원이라는 데가 어떤 곳이란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지독한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밥에 굶주리고 정에 굶주리며 살아온 명주는 그만큼 더 밝고 꿋꿋하게 살아야했다. 얼굴에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서 명주는 피에로처럼 가면을 쓰고 살기로 했다. 그때부터 허세를 부리는 습벽이 생겨났고 당돌하다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명주는 영우를 찾아갔다. 더 이상 유치하게 타임지를 들고 가진 않았다. 하루는 명주가 다녀간 뒤에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고모가 거실로 나왔다. “얘, 영우야, 그 명주라는 학생 저렇게 자꾸 찾아와도 괜찮으냐?” “예, 괜찮아요, 고모, 아주 불쌍한 학생이에요. 고아예요.” “그래? 그런데 보기엔 전혀 안 그래 보인다. 항상 명랑하고 밝고 어느 부잣집 규수인 줄 알았는데.” “공부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제일 잘해요. 내 수제자로 길러서 유학도 보내고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냐? 벌써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단 말이냐. 설마 네 각시 삼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네요. 그냥 내 애제자일 뿐이에요.” “행여 딴 맘 먹지마라. 네 부모님 아시면 난리 날라.” 명주는 사랑받고 싶었다. 아무한테든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 자길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늘 한결같이 생각해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제 또래의 남자애들은 다 애송이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그녀의 상대는 선생님이어야 했다. 그녀가 존경하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이 바로 민영우라고 단정 짓고 그녀의 운명을 그에게 걸었다. 이년 동안 계속 만나는 동안 민영우한테 심한 갈증을 느꼈다. 다른 연인들처럼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영우는 명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리탐구에만 여념이 없었고 명이라고 다정스럽게 부르며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는 것밖에 몰랐다. 정말 남의 애를 태우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싫으면 웃지를 말든지 왜 자기를 보면 애매한 미소를 짓느냐고 한번 따져보고 싶었다. 사 학년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우는 명주에게 말했다. “이 아파트는 방학 동안 비어 있을 테니 네가 와서 있어. 집도 봐줄 겸 말이야.” “싫어요.” “왜 싫어? 네가 사는 골방보다 얼마나 더 좋은데.” “나 선생님 따라가서 방학 동안 같이 있으면 안 돼요?” “뭐? 글쎄, 그럴까. 그거 좋겠구나. 우리 집엔 방도 많으니까.” 고모가 어머니한테 미리 연락을 하고 방학이 되자 세 사람은 짐을 꾸려 가지고 온양에 가서 택시를 잡았다. 꼬불꼬불 해안선을 따라 한 시간쯤 내려가니까 영우네 집이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려 한 백 미터는 걸어가야 했다. 부모님한테 명주를 소개했다. “제가 아끼는 제자에요. 졸업하면 제 조교로 대학에 남을 겁니다.” “네 고모한테 이 학생 얘긴 대충 들었다. 머리가 그렇게 좋다던데 인물도 아주 준수하구나.” 명주하고 고모하고 한방을 쓰기로 하고 각자 짐을 풀었다. 그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명주는 영우 방에서 늦도록 얘길 나누었다. “선생님, 이 집은 꼭 절간 같아요. 너무 인적이 없고 주위에 다른 집은 한 채도 없잖아요. 외딴집은 너무 외롭잖아요?” 영우는 이집의 내력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일정시대 경성에서 고관대작을 지내셨는데 송강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낙향하신 뒤에 여생을 녹수청산에 파묻혀 시름 모르는 자연과 동거하겠다는 꿈을 안고 여기다가 집을 지으셨는데 앞에 보이는 바다는 녹수요 뒤에 있는 산은 청산이라 생각하고 만족해 하셨대. 내일 나가보면 알겠지만 뒷산의 끝자락이 나지막한 언덕으로 바뀌면서 서해바다로 깊숙이 돌출하여 작은 반도를 이뤘는데 그 끝에 우리 집이 겸손하게 좌정을 하고 있는 거야. 앞을 보면 삼면이 바다요 뒤를 보면 육중한 산이라 풍광이 수려하고 산새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또 그 소리에 잠을 깨면서 그렇게 정적을 즐기시며 사셨대. 우리 집 오른쪽으로 이 언덕과 건너편 산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소금물 호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바닷물이 다 빠져나가면 조약돌 밭으로 변해버리고 만조 때는 파도가 너무 세어서 그 호수를 이용할 수가 없으셨대. 그래서 할아버지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입구에 높은 방파제를 구축하고 바닷물의 출입구를 최소한도로 좁혀놓았더니 정말 쓸모 있는 호수가 되더래. 할아버지는 그 호수를 자신의 아호를 따서 월인호 [月印湖]라 이름 짓고 꽤 큰 배를 띄워놓고 철 따라 친구들과 기생들을 불러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시조도 읊고 기생들의 장구소리와 거문고 소리에 장단 맞추어 춤도 추고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시며 세월 잊고 소일하셨다는 거야.”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겠네요.” “집 주위엔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어서 농부들이 경작할 수도 없고 집을 지을 수도 없는 아무 쓸모없는 땅이라 우리 집이 절간처럼 고립된 거지.” 다음날 아침 명주가 앞마당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완만한 나무 계단이 있어 쉽게 월인호 까지 내려가 볼 수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또 명주와 영우는 마주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마치 직업인들이 아침 먹고 나면 출근하듯이 이 두 사람은 기계적으로 매일 그렇게 했다. “선생님, 오늘은 우리 ‘말 이어가기’ 게임을 해요.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주기에요.”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보자.” “선생님이 먼저 시작하세요.” “그래. 그럼 공부” “부인” “인구.” “구름.” “...........” “지금 선생님 차례니까 빨리 말해야 돼요.” “내가 졌다. 그래. 소원을 말해봐. 약속한 대로 들어줄게” “저기 있잖아요. 다음에 보름달이 뜨면 월인호에 내려가서 배타고 좋은 음악 들으며 달구경하는 거예요.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아요.” “너무 쉬운 소원이라 실망했네. 그렇지 않아도 한번 그렇게 해 보려고 했는데.” 매일 저녁이면 영우 방에선 두 사람의 이야기 소리 아니면 조용한 명상음악이 흘러나왔고 그리고 영우가 사진첩을 펼쳐놓고 옛날 사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소리 또는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 소리도 들리곤 했다. 기다리던 보름달이 떴다. 둘은 담요와 휴대용 테이프 녹음기와 모기향을 준비해 가지고 계단을 내려갔다. 여름이지만 바다 공기는 덥지 않았다. 영우가 우선 선미에 모기향을 피웠다. 둘은 담요를 두 겹으로 배 바닥에 깔아 놓고 나란히 누웠다. 그러고는 녹음기를 틀어 베토벤의 월광곡을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은 창백하고 월광은 온천지를 은백색으로 물들였다. 사물의 명암이 줄을 그어 놓은 듯 확연하여 낮과는 사뭇 달랐다. 호숫물은 새까맣고 바다에서 들어온 파도가 출렁거릴 때는 그 흰 파도가 희다 못해 형광처럼 빛을 발했다. 세상에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이윽고 둘은 눈을 감았다. 달빛이 월광 곡의 곡에 맞추어 달에서부터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며 아지랑이 같이 하늘하늘 그들한테 내려오고 있는 것이 감은 눈에 보였다. 얼마 후 명주는 달빛에 홀린 듯이 상체를 약간 일으켜 세우고 눈을 감고 있는 영우의 얼굴을 한참 내려다봤다. 이마, 눈, 코를 들여다보다가 이젠 입술을 뚫어지라고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자기 입술을 살포시 영우의 입술 위에 포갰다. 몇 초가 지났을까. "아파트가 방학동안 비어 있을 테니 네가 와서 봐주렴" "선생님, 보름달 뜨면 배타고 음악 들으며 달구경 해요" 뇌출혈로 쓰러진 영우는 인사불성으로 앙상한 모습만… 영우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우가 돌아누우며 명주를 으스러지라고 끌어안더니 열정적인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둘은 생전에 처음 해본 키스인데 많이 해본 사람들처럼 열광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키스에 몰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둘은 입술을 떼고 뜨거운 숨을 헉헉 내쉬면서 반듯하게 도로 누웠다. 또 몇 초가 흘렀다. 마침내 두 몸이 아래위로 합장을 하더니 서서히 파동을 치기 시작했다. 언제 벗었는지 둘은 아랫도리에 옷이 없었다. 둘은 격한 포옹과 동시에 숨쉬길 멈췄는가 싶더니 영우가 조심스럽게 포옹을 풀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달은 저만치 옮겨간 자리에서 여전히 세상을 은백색으로 싸늘하게 물들이며 그들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이윽고 영우가 입을 열었다. “결혼 전 까지는 동정을 지키려고 했는데.” “후회하세요?” “아니. 그냥 미안해서.” “뭐가요?” “허락도 없이…….” “사랑도 허락을 받고 해야 되나요?” “나도 어쩔 수 없이 속물인 가봐. 혼자 고고한 채 해왔지만 나도 역시 남자는 남자라…….” “선생님이 남자란 걸 이제 알았어요?” “아무튼 미안해, 명아. 내가 지켜주고 아껴줬어야 되는데…….” “지금까지 잘 지켜 주셨잖아요. 사실은 제가 미안해요. 제가 선생님을 정복했거든요. 희망사항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무거운 책 더미에 삼십일 년 동안 깔려있던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이 분출구를 찾아 활화산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를 내며 한번 폭발하더니 이때까지 명주가 리드해오던 두 사람의 관계 발전에 대한 주도권을 영우가 쥐었다. 이젠 어두운 별 밤에도 둘은 저녁만 먹으면 회중전등 하나 들고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배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누워서 천상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속삭이기도 했고 사랑도 했다. 영우는 바위 덩어리가 언덕에서 굴러내려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바다에 빠지듯이 아주 깊숙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바다에 빠진 바위가 스스로는 물 위로 올라올 수 없듯이 영우는 한번 사랑에 깊숙이 빠져버리자 스스로는 사랑의 동굴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주 깜깜한 밤엔 영우가 명주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아서 새벽에야 고모 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 고모가 눈치를 채고 오빠한테 조카와 학생과의 관계를 다 말하고 이제 뜯어말리긴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영우의 부모가 둘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영우가 무릎 꿇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희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영우야, 네가 그럴 줄은 이 애비도 어미도 상상도 못했구나. 공부밖에 모르고 아무리 과분한 신붓감을 소개해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네가 이게 웬일이냐. 혼인은 인륜대사인데 네 어찌 마음대로 여자를 가까이 하여 무책임한 일을 벌였단 말이냐.” “예,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바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고아라는 걸 빼놓고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아입니다. 그렇지만, 근본도 모르는 고아는 아닙니다. 보육원에 가서 기록을 다 확인해 봤습니다. 친가는 파평 윤씨고 외가는 안동 권씨입니다. 무엇보다도 저희는 지난 이년 반 동안에 정이 깊이 들어 이젠 헤어져서는 둘이 다 살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덕으로 일찌감치 개명하신 아버지라 크게 노여워하시진 않았지만 금방 혼인 승낙은 안 하셨다. 일주일을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 세분이 몇 번 그 문제로 상의를 하시더니 서울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명주가 졸업하면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우선 영우가 종손 독자니까 빨리 후손을 보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다음해 이른 봄에 명주가 졸업하자 대학원에 진학하고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명주는 영우의 조교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신혼생활에는 하루하루 행복이 넘쳐흘렀다. 명주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진짜 가족을 갖게 됐고 영우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됐다. 불 끄고 자다가도 달빛이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을 비추면 누구라 없이 먼저 깨난 사람이 머리맡에 있는 녹음기를 틀어 월광곡을 들었다. 둘은 그때부터 낮은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명아, 넌 네가 나한테는 유일무이한 여자란 걸 알지. 너 앞에도 없었고 너 뒤에도 절대 없을 거야.”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한테도 당신뿐이에요. 당신 없으면 난 못 살 것 같아요.” “나도 그래. 난 내가 캥거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단다. 앞 배에 있는 큰 주머니에 너를 넣고 안고 다니면서 잠시도 너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단다.” “나도 그래요. 난 우리가 원앙새 커플이라고 착각하기도 해요.” 영우는 아내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로 말을 대신한다. 명주도 남편의 말에 감동하여 뜨거운 입술로 받아드린다. 이윽고 월광이 그들을 지나가고 나면 둘은 아주 곤한 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원래 영우는 명주가 졸업하면 미국에 유학을 보내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해서 대학 강단에서 평생을 함께 보낼 계획이었는데 부모님은 어서 손자를 안아보고 싶은 욕심에 명주를 혼자 유학 보낼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셨지만 그것보다도 영우는 이제 명주와 잠시도 떨어져 살아갈 자신이 없어 유학 계획은 접어 버렸다. 둘은 같이 출근하고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이 먹고 자고 아주 사이좋은 잉꼬부부로 많은 동료들의 부러움 속에서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이년이 흘렀다. 어느 날 명주의 조교실에 한 학생이 노크도 없이 뛰어 들어오더니 “윤 선생님, 큰일났어요. 민 교수님이 쓰러지셨어요. 빨리 강의실로요.” 명주가 강의실에 달려가 보니 사람들이 쓰러진 영우 주위에 몰려들어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영우는 이미 인사불성 상태였다. 사이렌 소리가 나며 앰뷸런스가 도착하더니 구급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강의실로 달려왔다. 이 광경을 보며 명주는 실신하고 말았다. 급히 명주도 병실로 옮겨졌다. 얼마 후 깨어난 명주는 영우 병실에 가서 영우를 애타게 불러보고 흔들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명주는 눈물투성이가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와서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고 했다. “심한 뇌간 출혈로 다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지키며 시간을 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식물인간? 명주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번개처럼 휙 지나가는 순간 눈앞이 노래지더니 명주는 또 한번 정신을 잃었다. 시부모님들이 올라오셔서 병실을 특실로 옮기고 고모님을 환자한테 붙여놓기로 하시곤 곧 집으로 내려가셨다. 명주는 남편의 간병을 자기가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고모님은 그들의 아파트에 기거하시며 명주가 먹을 음식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하루에 한두 번씩 다녀가시고 환자 곁에는 명주가 스물네시간 붙어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명주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합장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고모님이 오시면 잠깐 밖에 나가 가까운 곳에 있는 텅 빈 성당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합장하고 성모 마리아께 기적을 빌었다. 아침에 깨면 명주는 영우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영우씨, 밤새 잘 주무셨어요? 오늘도 이렇게 살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그냥 이렇게 누워 숨 쉬고 있어주기만 하면 돼요. 살아있는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러니까 죽지만 말아줘요. 알겠죠?” 명주는 대답 없는 영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줄줄 눈물을 흘린다. 명주는 나날이 초췌해 가고 있었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 년이 됐다. 영우에게선 아무런 희망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명주의 얼굴은 폭삭 삭아가기만 했다. 몸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 어느 날 고모가 와서 영우는 자기가 보고 있을 테니 빨리 아파트에 가보라고 했다. 시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명주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아가, 네 마음을 우리가 왜 모르겠니.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제 그만 고집을 꺾고 영우는 우리한테 맡겨라. 병원 측에서도 보호자가 간병하는 걸 원치 않는다. 영우 같은 경우엔 특별 간병교육을 받은 전문 간병인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간병인이 하는 일까지 간호사가 해야 하니까 일손이 너무 딸린다고 간병인을 고용해서 영우를 돌보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네 거울 좀 한번 봐라. 네가 먼저 세상 뜰까봐 겁이 난다.” 이번엔 시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마침 얼마 전에 영우 선배 하나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나갔는데 네 얘길 했더니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자기한테 보내기만 하라고 하더구나. 여기 네 여권과 비행기표 그리고 돈 넉넉하게 마련해 왔으니 빠른 시일 내로 떠나도록 해라. 일단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그 박상기 교수란 사람이 너를 마중해 줄 것이다. 그 사람과 상의해서 공부를 계속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한 일년 여기 일 깨끗이 잊어버리고 여행이나 다니며 몸을 추스르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결정하거라.” 명주의 답도 기다리지 않으시고 아버님은 두툼한 봉투를 하나 남겨 놓으신 채 방을 나가셨다. 시어머니는 계속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며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걸어 나가셨다. 명주는 병원으로 돌아와서 고모한테 시부모님 말씀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고모는 아주 잘 생각했다고 말하며 오늘 아버님이 간병인을 구해 놓으시고 가셨으니까 내일 아침부터 간병인이 나올 거라고 했다. 명주는 대충 신변정리를 하며 출국준비를 마쳤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영우의 손을 잡고 오열하며 말했다. “여보, 영우 씨, 나 지금 미국으로 떠나요. 일 년 후에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혼자 떠나시면 안돼요. 난 단 하루도 아니 한시도 당신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거예요. 매일 밤 당신의 영상을 끌어안고 잠들 거예요. 부디 안녕, 여보.” 명주는 영우의 눈꼬리에 깨알만한 보석 알이 하나 박힌 듯 빤짝이는 빛을 보았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눈물 방울이었다. 간호사한테 물어봤더니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명주의 작별인사에 영우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거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박상기가 얼른 알아보고 명주를 자기 차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에 마침 작은 아파트가 하나 비어서 우선 그리로 거처를 정해놨으니 거기서 천천히 여독을 풀고 푸욱 쉰 다음에 앞으로의 일을 얘기해 봅시다.” “박 교수님은 거기서 가족하고 같이 사세요?” “아니, 데리고 올 형편이 못돼서 혼자 들어 왔죠.”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박 교수가 늦은 아침에 명주의 아파트 문을 노크했다. “바로 앞길 건너편이 시립공원인데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면서 얘기나 좀 나눌까요?” 아파트 건물 출입구에서 앞길을 건너가니 초라하고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사람 대신에 낙엽들이 모여 앉아있는 벤치가 여기저기 쓸쓸하게 흩어져 있었고 아름다운 단풍잎들을 다 떠나보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슬픈 표정으로 곁에 있는 벤치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명주는 그 황량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쓸쓸해서 좋았다. 영우 없는 이 곳에서 혼자만 즐거울 수는 없었다. 둘은 천천히 공원 변두리를 걸어가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여기 시립대학에 대학원이 있긴 한데…….” “아네요. 저는 공부를 계속할 마음 전혀 없어요. 남편과 함께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던 건데 이젠 그게 아니잖아요. 남편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돌아와서 제 음성을 알아들을 수만 있게 되면 저는 남편을 고향집으로 데리고 내려가서 제가 곁에서 평생 친구해 주다가 그 사람 떠나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 “그렇군요.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의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으니까 민 교수한테도 희망이 있다는 걸 나는 믿어요.” “네, 저도 그 희망으로 살고 있어요. 남편 주치의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했어요.” “혹시 취직 생각은 있는지?” “네, 아주 돌아버리기 전에 뭐라도 붙들고 있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영어 회화에 자신이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명주 씨한테 아주 잘 맞는 자리를 하나 생각해 놓은 게 있거든요. 내가 여기 시립대학에서 이중 언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온 학생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지요. 요즘 한국학생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서 한국인 도우미가 필요하던 참인데 명주 씨가 아주 적격일 것 같아요.” “저한텐 너무 좋은 자리지요. 더구나 박 교수님을 돕는 일이니 낯선 미국인들과 상대 안 해도 되고요.” 명주는 다음달부터 박 교수의 보조 교사로 일하기로 했다. 한 아파트 건물에서 같이 살며 한 차로 같이 출퇴근하면서 같은 일을 하니까 마치 한국에서 영우와 같이 살며 같이 하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해 여름 방학 때는 둘이 함께 한국엘 나갔다. 영우는 고모를 통해서 들었던 대로 병엔 차도가 없었으나 얼굴은 살도 좀 오르고 혈색도 전보다 좋았다. 주치의는 이런 상태로 이십년 이상 사는 환자를 많이 보았다고 하며 무엇보다 영우는 젊고 지병이 하나도 없으니까 오래 살 확률이 높다고 했다. 명주는 영우의 생명이 유한부 인생이 아니라는 말에 우선 안심했다. “여보, 명주가 당신 보러 미국에서 왔어요. 당신 얼굴은 많이 좋아 보이는데 아직도 제 말소리 안 들리세요? 박상기 교수님이 미국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명주는 영우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안하기로 했다. 분명히 영우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데 진짜 영우는 거기에 없었다. 거기엔 영우의 껍데기만이 있었다. 혼이 빠져나간 영우는 이미 영우가 아니었다. 처음엔 아직 숨 쉬고 있는 영우가 고맙다고 귀에다 대고 수없이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젠 혼이 빠져나간 사람 앞에서 혼자 속삭이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일 년 전에는 밤에 혼자 영우를 지키며 대화를 할 때 외로운 줄 몰랐다. 영우가 겉으로 반응은 없어도 속으로는 다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껍데기만 남겨놓고 혼이 나간 영우하고는 이제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너무 너무 외로웠다. 이 지독한 외로움이 명주를 말려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외로웠다. 명주는 소리 없이 손수건을 계속 눈에 대고 있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명주는 박 교수와 함께 미국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주 친근해지고 정도 들어서 친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냈다. 박 교수가 영우하고 비슷한 점도 많고 해서 쉽게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아침은 각자가 간단하게 해결했지만 점심은 교수식당에서 박 교수가 샀다. 퇴근하면서 둘은 식료품상에 들러서 장을 보고 명주가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후엔 같이 텔레비전 보고 음악도 듣고 낮에 학생들과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홉 시쯤이면 헤어졌다. 명주는 출근하지 않는 날 아침이면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파트 옆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명주는 아파트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좁은 외줄기 도로 양쪽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공공건물과 상점들을 보며 미국에 이렇게 작은 도시도 있나 싶었다. 처음엔 낯선 거리였지만 이젠 정이 들어 창밖을 내다 볼 때마다 늘 이 조용한 소인국 같은 작은 도시에 영우와 같이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밤엔 서울 아파트에서처럼 달빛이 그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런 밤이면 박교수가 저녁을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명주는 녹음기 하나를 들고 앞 공원으로 향했다. 아무 벤치에나 앉아서 달을 보거나 공원 안을 거닐며 월광곡을 들었다. 달을 보고 앉아 있으면 월광곡이 저절로 들려왔고 걸으면서 월광곡을 들으면 그 선율이 타고 내려오는 달빛이 저절로 보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빛에 젖어 있다 보면 으슬으슬 한기를 느낀다. 그때서야 명주는 아파트를 향해 발을 옮긴다. "한국인 영어 도우미로는 명주씨가 적격일듯" 박상기 없이 혼자 살 생각에 고독감만 엄습 "영우는 끝내 저 세상에…불효막심한 놈이야" 왜 달빛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을까. 왜 월광곡은 들어도 들어도 좋을까. 방에 돌아오니 창문으로 들어왔던 달빛은 떠나고 없었다. 어떤 밤엔 자다가 달빛이 얼굴을 비추면 잠이 깬다. 반사적으로 녹음기를 튼다. 그러나 거기엔 영우만이 없었다. 서울에서 영우와 달밤을 보냈던 아파트에서의 추억이 추스를 수 없을 만큼 명주의 마음을 쥐어짰다. 또 일 년이 지났다. 박상기 교수의 교환교수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윤 선생, 이번 주 강의가 내 마지막 강의가 될 거야. 다음 주 월요일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거든.” 명주와 점심을 같이하며 박 교수가 한 말이었다. “작별의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교수님, 너무 서운해요.” 명주는 일요일 정성껏 장을 봐가지고 와서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박 교수는 여느 때처럼 찾아와 식탁에 앉았다. 포도주를 한 잔씩 기울이고 둘은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명주는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니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먹고 있는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수저를 놓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눈물을 수습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니 박 교수도 수저를 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아냐, 윤선생이 학교 안팎에서 날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이 재미없는 사람하고 이년씩이나 한결같이 동무 해주고, 고맙기로 말하면 내가 더 고맙지.” 명주는 자기를 항상 지나치게 신사적으로만 대해주고 연구밖에 모르고 정도만 걷는 군자 같은 박 교수가 영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고 저녁 아홉시만 되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나갈 때마다 좀 더 있다 가지 하며 아쉬워했었다. 박상기는 명주한테 다른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었지만 옆에 있지 않으면 괜히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특히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텅 빈 방에 들어서면 너무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일이면 가족 분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지 않으세요?” “그렇기도 하지만 윤 선생을 수만 리 이국땅에 홀로 남겨놓고 떠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착잡하군.” 아홉시가 되자 박상기가 일어서면서 “언제든지 한국에 나오게 되면 연락 줘요.” “내일 떠나시는 건 보지 않겠어요.” 명주는 다음날부터 박상기 없이 혼자 살아나갈 생각에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날씨도 차고 해서 오늘은 앞 공원에 나가지 않기로 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다. 포도주 덕인지 명주는 금세 깊은 잠에 푹 빠져들었다.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침 준비할 생각도 안 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다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명주가 근무하는 이곳 시립대학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이 도시의 조용한 거리가 명주를 보자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다. 명주도 손을 흔들어 답을 했다. 명주한텐 정다운 고향의 거리가 따로 없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명주에겐 엄마의 젖 냄새가 나는 고향은 아무 데도 없었다. 명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신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련다. 영우가 눈을 떴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며 살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영우는 영우가 아니었다. 하늘은 나를 위해 영우를 생기게 했고, 영우를 위해 나를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런데 영우는 지금 이곳에도 한국에도 없다. 한국엔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이곳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학생들도 있고 정든 거리와 공원도 있다.” 학생들 생각이 나자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박교수 없이 처음으로 혼자 출근을 하고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다. 초승달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 도저히 방안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공원으로 나갔다. 이제 낙엽조차 다 떠나버린 벤치에 혼자 앉아 초승달이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걸 바라보았다. 저녁이고 낮이고 이 공원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영우를 대신해서 언제나 명주를 희생적으로 도와주던 박상기, 친오빠같이 명주가 스스럼없이 따르고 늘 그녀를 챙겨주던 무척 고맙고 착하기만 했던 그 사람도 이젠 옆에 없다. 이년 동안을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항상 같이 있었던 그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주한테는 그 사람이 남자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영우와 비슷한 점이 그렇게도 많은 그 사람이 싫지 않을 뿐이지 손 한번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명주는 이제 다시는 그 누구하고도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걸 박상기와의 관계를 통해 재확인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고독만이 옆에 남아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영우가 사무치게 그립고 영우와 같이 있었던 순간들이 견딜 수 없도록 그리웠어도 박상기가 옆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외로움을 타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 존재란 걸 알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제 완전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명주의 눈에 불현듯 영우가 보였다. 그가 저만치 서서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낮은 음성으로 명주를 부르며 다가오는 모습이 짙은 안개에 쌓여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눈물을 닦아내니 안개도 영우도 간 곳 없고 교교한 달빛만이 싸늘하게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영우씨, 따라갈 거예요. 그때 영우씨 따라 온양 집에 갔듯이. 그 때처럼 또 절 데려가 주세요.” 진정으로 애원했다. 초승달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한 일주일 지나니까 달빛은 명주가 잠든 후에야 살금살금 기어 들어와서 회중전등으로 비추듯이 명주의 전신을 비추었다. 명주에게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자다가 달빛이 얼굴을 비추면 벌떡 일어나 얇고 하얀 잠옷 위에 너무 길어서 잘질 끌리는 역시 얇고 하얀 홈웨어를 걸쳐 입고 소리 안 나는 펠트 샌들에 발을 집어넣고 살며시 문을 열고 나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 도 한번 살며시 건물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스스로도 자신이 유령같다는 생각을 하며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간다. 달빛이 온 세상을 은백색으로 칠해 놓았다. 그 안에서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마치 몽유병자인 양 마냥 걷는다. 귀에는 월광곡이 달빛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 백야의 하얀 공간을 배경으로 커다란 스크린이 비스듬히 걸려 있고 명주의 지나간 반생이 고장 난 영사기에서 비춰지는 무성영화처럼 한 장면씩 한 장면씩 아주 천천히 흐릿하게 지나간다. 그러나 영우를 처음 만난 장면부터는 총천연색으로 음성까지 나온다. 어떤 장면은 지우기도 하고 수정도 하고 새로 만들어 집어넣기도 하며 편집을 해나간다. 지금 명주는 자기가 영화감독이 되어 지나간 반생을 리메이크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보통 한 장면의 재창조 작업은 하루도 걸리고 이틀도 걸렸다. 한 장면이 끝나면 아무 벤치에나 좀 앉아 있다가 달이 기울어지면 내일 다시 작업을 계속하기로 하고 아파트로 돌아간다. 숨 막힐 듯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이며 명주는 아침까지 깊은 잠에 푸욱 빠진다. 세월의 강이 일년을 흘러가더니 또 가을이 왔다. 명주의 유령놀이는 여전했다. 이제 지난 일년 동안 만들어 오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닥쳐올 겨울엔 공원에 못 나올 테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끝내야 했다. 그 마지막 한 장면은 내일 마무리를 져야지 하고 돌아서는데 아주 낮은 소리로 “명아, 명주야” 라고 부르는 영우의 음성이 들렸다. 산울림처럼 되풀이 하던 그 음성이 점점 작아지더니 아주 끊어져 버렸다. 월광곡은 계속 들리고 있었다. 명주가 방에 들어서니까 달빛도 자러갔는지 거기 없었고 따라서 월광곡도 들리지 않았다. 아까 공원에서 들었던 영우의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여 누울 수가 없었다. 전등을 켰다. 시간을 보니 한국은 지금 새벽 다섯 시였다. 고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고모님, 별일 없지요?” “네가 다 알고 전화하는 게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왜요?” 명주의 불안한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나 방금 병원에서 돌아온 길이란다. 영우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한 시간 전에 세상 떴단다. 에이 불효막심 한 놈…….” 명주는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명주는 기어이 올 것이 와버렸다고 생각하며 영화의 마무리를 지금 가서 짓자 하고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그 이튿날 이른 아침 공원 청소부가 벤치 위에 소복을 하고 길게 누워있는 한 젊은 여인을 발견했다. 몸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끝 수상 소감 "뇌출혈-반신불수 딛고 이룬 기쁨" 우선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과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재미교포에게 이런 황금 기회를 마련해주신 중앙일보사에 뜨거운 감사와 성원을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의 졸작을 가작으로 뽑아주신 홍승주 작가님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수상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몇 년 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이른 여섯 살의 제가 허리에 히팅팻을 두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쪽 손으로 보름을 꼬박 타자를 치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특별한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몸이 불편해 망설이는 저에게 꼭 응모해보라고 적극 권장해주신 시인 김용철 박사님 이 소설의 초고를 읽고 값진 조언을 해준 수필가 박관순형 언제나 제 소설을 애독하며 진심 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던 장영기 교수 이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가슴속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삼십 분만 앉아 있어도 발이 붓고 요통이 심하다고 호소하는 저에게 아예 컴퓨터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성화를 대던 아내가 이 소설을 집필할 때는 오히려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써보라고 옆에서 밀어주었어요. 이들이 없었다면 전 정말 소설이고 뭐고 쓸 용기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중앙일보사에 감사 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권이조

2011-05-24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부문 가작…건너야 할 강

교수 회의가 끝나자마자 학장실로 돌아왔다. 창 밖에는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서편 하늘에는 노을이 붉다.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던 캠퍼스는 이제 정적이 흐른다. 퇴근 전에 밀린 우편물을 정리하는데, 학술잡지 등 수많은 인쇄물 중에서 푸른 볼펜으로 차분하게 주소를 쓴 항공 우편이 눈에 띈다. 보낸 이는 라이언 존스(Ryan Jones), 그 이름을 보고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친애하는 닥터 김"으로 시작하여 컴퓨터로 쓴 편지에 볼펜으로 사인했다. 그 애가 나를 닥터 김이라 부르다니…… 너무나 의례적인 호칭이라 마음에 걸리지만 어떻게 나를 달리 부를 수 있나? "엄마의 장례를 한 달 전에 치렀습니다. 닥터 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편지합니다. 유방암 때문에 약물 치료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 나이를 기억하실지 몰라도 이제 겨우 50입니다……." 나는 무의식 중에 헉하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지금까지 나 자신의 일이 아니면 모두 무심하게 지나쳐 온 나, '가슴이 무너진다.'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라이언이 한 달 전에 치렀다는 메기 존스 장례식의 프로그램을 드려다 본다. 자신이 컴퓨터로 고안한 것 같으며, 복사 용지를 반으로 접어 앞뒤 4페이지로 만들었다. 표지에는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 폭 넓은 강 위로 긴 다리가 놓여 있다. 그 경치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중년의 메기. 살이 조금 오른 것 같으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다. 표지의 배경이 눈에 익어 자세히 보니, 옛날 메기가 살던 미국 남부 조지어 주(州)에 있는 코머(Comer)라는 곳에 있었던 그 긴 다리이다. 특이하게 지붕 덮인 다리였다. 이런 종류의 다리로는 조지어 주에서 가장 길다고 했다.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했던 그곳을 표지로 했구나.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인가? 왓슨 밀 (Watson Mill) 다리와 폭포, 그리고 강은 메기 집에서 가까웠다. 브로드 리버, 이름조차 폭 넓은 강이라고 했다. 강을 따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산책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30년 전, 내가 애틀랜타 시내에 있는 조지어 텍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주말에 거길 가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머는 애틀랜타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두 시간 떨어진 곳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메기는 내가 있던 생화학과의 비서였다. 메기의 모친은 보스턴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메기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고 그와 헤어진 후 그곳에서 메기를 기르며 슈퍼마켓에서 일했다. 집이 가난하여 메기는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워낙 부지런하여 사무실 일이 끝나면 실험실에 와서 시험관이며 비커 등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메기는 언어감각이 뛰어났으며 작가 되기를 원했다. 내가 쓰고 있던 박사 논문의 어색한 영어, 소위 콩글리쉬를 손봐주었을 뿐 아니라 논문구성이며 앞뒤 서술 형식까지 고쳐주었다. 그 당시 선다형, 객관식 시험 등 한국식 교육의 결과로 글 쓰는데 훈련이 안 되었던 나는 창피한 얘기지만 고등학교만 나온 시골 아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항상 남을 도와주고 감정이 풍부한 메기는 동양인에게 호기심이 있어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음식도 가져오고 과자도 구워 주었다. 하루는 왓슨 밀 다리 이야기를 하면서 주말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머니가 그곳에서 가까이 살아 점심에도 초대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동양인을 무시하는 백인 여자들을 자주 보았다. 특히 남부지방이라 인종편견이 심한 고장이었지만 메기는 자유스럽고 편견이 없었다. 보수적인 여성들이 볼 때 메기는 가난한 화이트 트레쉬(white trash)였다. 아내가 먼저 학위를 받고 첫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우리 내외는 동갑인데 나는 군 복무 때문에 늦게 미국에 왔으므로 아내보다 1년 더 머무르게 되었다. 한국에 가족이 있고 또 나이가 열 살이나 더 많은 걸 알면서 메기는 내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것이 싫지 않았다. 한국 남자로서는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용모에는 자신이 있었고, 생전 처음 백인 여자를 상대하니 마음이 붕 떴다. 어느덧 논문도 거의 끝나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므로 그 터질듯한 젊음, 자유분방한 아이의 초대를 마치 보너스라도 타는 기분으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여름날 오후, 우리는 강가로 갔다. 아름드리 큰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강물 위로 쓰러져 있었다. 메기와 나는 강물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어가 나무둥치 위에 걸터앉았다. 짙은 나무 그늘, 발밑으로는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강바람이 시원하였다. 빛나는 금발에, 그녀의 눈은 깊은 바다와 같이 초록빛이었다. 몸에 꼭 끼는 청바지에 목이 깊게 파인 흰 블라우스, 체격이 빈약한 아내만 보아온 나는 몸을 떨었다. 여간 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나였다. 혼자 힘으로 유학 오고 또 이름있는 집안의 딸을 유학 중에 만나 결혼하여, 한 번도 내 마음의 고삐를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둘 다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서툰 영어로나마 마음을 털어놓았다. 가정교사 노릇을 하던 중 가르치던 아이가 대학에 떨어져 그 집에서 당장 쫓겨난 이야기를 했더니 메기가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시절'이란 말을 들으면, 으레 그 한적한 여름 오후, 쓰러진 나무 둥치 위에 앉아 그녀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해 여름은 내 인생의 여름이었다. 일생 중에 그때가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메기와 나는 주말마다 그 공원에 가서 아무도 없는 언덕 위로 갔다. 내가 나무둥치에 기대앉으면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올라앉아 두 팔로 나의 목을 감았다. 땀으로 끈적이는 그녀의 젖무덤, 내 혀끝에 말려 있는 젖꼭지의 감촉, 나를 원하였으므로 능동적이었고 나를 가졌으므로 황홀한 메기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늘 차갑게 느껴온 아내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이었다. 눈을 감고 그날을 생각하니 지금도 메기의 입김을 느끼는 듯하다. 장례식 프로그램을 다시 들여다본다. 표지를 넘기니 둘째와 셋째 페이지에 식순이 적혀 있다. 나는 어느덧 시골 교회에서 치러지는 조촐한 장례식 앞자리에 앉아 오르간 장송곡을 들으며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해 본다. 약물 치료로 머리칼이 빠지고 먹지 못해 초췌해진 메기의 모습,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메기의 자존심이었고, 자제력이었다. 마지막 페이지 유가족 난에는 아들 라이언, 며느리 캐슬린, 손자 에디라고 적혀 있다. 또 시(詩) 한 수가 적혀 있는데 마지막 몇 마디가 이러하다. "……. 외롭고 가슴 아플 때는 친구들에게 가서 좋은 일을 하며 네 슬픔을 묻어다오. 날 그리워하되 떠나게 해줘." 빛나는 금발에, 그녀의 눈은 깊은 바다와 같이 초록빛이었다. 몸에 꼭 끼는 청바지에 목이 깊게 파인 흰 블라우스, 체격이 빈약한 아내만 보아온 나는 몸을 떨었다. 지금 심정으로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어,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갈 거야." "응, 그래. 잘 됐네. 나도 오늘 아주 바빠. 10월 월말 보고서를 우리 부서에서 작성하고 있는데, 집에 가기 전에 다 읽어야 해." 경영학을 공부한 아내는 삼성 계열 회사의 중역이다. 이튿날 토요일 아침, 어젯밤 늦게 들어온 아내가 곤히 자는 사이 나는 등산복 차림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 2호선으로 중림동에 내려 약현 성당 쪽으로 간다. 주위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시절에는 언덕 위의 성당 첨탑이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렵사리 성당 입구를 찾아 본당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891년에 지었다고 한다. 서소문 근처에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성당이다. 소박하나 아름다운 이 성당은 내가 유아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아내에게 끌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청담동 성당에 다닌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일요일 미사도 빠질 때가 잦지만, 아내는 성당 일이라면 아주 열심이다. 나는 평소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가 어려울 때는 어머니의 추억이 어린 이곳을 찾는다. 30년 전, 메기가 임신했다는 편지를 받고 제일 먼저 찾은 곳도 여기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 전임강사 자리를 얻으려고 여념이 없을 때였다. 같은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에게 혹시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고 아내가 알까 봐 전전긍긍했다. 괴로웠지만 답장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고해성사를 보았다. 메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나, 고해성사가 무슨 소용인가? 그 후 성당에 다니는 그 자체마저 위선인 것 같아 오랜 세월 동안 일요일 미사도 소홀히 했다. 그런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또다시 자석에 끌리는 쇳조각처럼 이곳에 왔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돌에 새겨 열네 군데에 세워놓았다. 수난과 죽음 사이에 일어났던 그 사건들을 하나씩 묵상하며 나는 간절히 메기를 위해 기도한다. 독한 약물에 시달리며 나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일생을 소박하게 살며 고생만 하다가 죽은 그녀. 예수님이 기력이 떨어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 서 있다. 수난과 죽음을 당한 때가 30대 초반, 나는 그 나이에 남의 어려움과 고통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출세와 안락을 위해 남을 이용 만하였다. 메기도 그 중의 한 사람, 영어 회화 연습을 위해 자주 만나다가, 나의 '아름다운 시절'로 인하여 라이언을 낳았다. 작가의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비서직에서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갑자기 멈추어 선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녀 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갈 것 같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마무리하려고 앞으로 몇 년 더 일할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제 라이언의 편지를 받고 비수에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낀 데는 이유가 있었다. 2년 전에 라이언이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때는 메기가 살아 있었고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의 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그 메일을 깊숙이 컴퓨터에 숨겨 놓고 회답하지 않다가 어제 출력한 것을 안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어 읽는다. 예수님이 기력이 떨어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는 장면을 새긴 돌 앞에서. 친애하는 닥터 김, 저는 라이언입니다. 제가 누구인지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저의 성은 존즈, 나를 길러 준 아버지 성입니다. 어머니보다 20년 연상이었으며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제게 쏟은 정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보이스카우트, 야구 연습 등 항상 저를 데리고 다녔지요. 사랑과 절제를 통해 저를 단련시켜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부가 어떤 분인지 알고 싶습니다. 특히 저는 작년에 결혼하여 곧 첫아기가 태어납니다. 유전적으로 유의할 사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생부가 어떤 분인지 알면 아기 기르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도록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연락 바랍니다. 라이언 드림 라이언은 연락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사정이 있었다. 그즈음 나는 자연과학대학 학장에 선임되었다. 은퇴하기 전에 학장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으며 대과 없이 이끌어 온 내 출세에 금상첨화였다. 그전 해에 우리 내외는 여성잡지에 이상적인 부부로 선정되어 표지에 사진이 나오고 긴 기사가 실렸는데, 생화학 부문에서 이룬 나의 학술적인 업적이며, 아내의 신분과 성당에서의 활동 등이 상세하게 기사화되었다. 인터뷰했던 성당 간부의 말을 인용하면 아내는 "하나도 버릴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한번 잡지에 나니까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해 우리는 화려하게 매스컴을 탔다. 그럴수록 나는 라이언의 이-메일을 깊숙이 숨겨놓고 끙끙 앓고 있었다. 우리 아들 진수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라이언보다 두 살 위라 서른둘인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화려한 부모 그늘에서 자라서 그런지 남과 경쟁하지 못하여 어렵사리 얻어준 직장에서 오래 배겨내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주는 생활비로 오피스텔에서 산다. 이튿날 일요일, 아내가 성당 봉사활동을 마치고 다섯 시경에 집에 돌아왔다 "여보, 이리 좀 와요. 긴히 할 말이 있어요." "주말에 읽어야 할 것이 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 거요? 여보, 그런 거 중요하지 않아요. 이리 와요.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미뤄 온 이야기가 있소." 그제야 아내는 긴장하며 내 옆에 앉는다. 조용하게 메기와 라이언에 얽힌 과거를 얘기하니 아내는 석고상과 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듣고 있다. "미안해요. 당신한테 이렇게 잔인한 고백을 하게 되어. 오랜 세월 괴로웠소. 이젠 학교에서 은퇴하겠소. 그리고 미국에 며칠 다녀오겠소." 아내가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가더니 변기에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낸다. 구토한다든지, 열이 난다든지. 사업을 크게 일으킨 부친의 성격을 닮은 아내는 연민의 정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아내가 두려워 지금까지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 충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내의 강직한 성격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 가정 생활에 큰 파탄이 오지 않을까? 그 이튿날 아내가 출근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한 페이지가량 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꼭 할 말만 적은 편지를 놓고 출근했다. 자기 자신과 그 백인 여자를 위해 한마디 한다고 전제하고 나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매정하고 경박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앞으로 같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한 인간으로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 아내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도 옳을 것 같다. 여행사에 연락하여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한다. 1주일 후,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현지 사각으로 아침 9시 반 경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서 직행으로 13시간, 대한항공이 애틀랜타 공항을 비롯하여 미국 중요 도시에 직행한다는 것은 바로 국력을 의미한다. 30년 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두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애틀랜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했던 그 옛 도시가 아니라 1996년 올림픽 이후 당당히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내가 공부했던 조지어 택 캠퍼스 안에 올림픽 선수촌이 지어졌으며 지금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인 인구도 많아 인천에서 이곳까지 오는 비행기에 빈자리가 없었다. 비행장 지하의 전철 남쪽 역에서 내려 라이언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5일 예정으로 오니까 가방 하나, 라이언과 캐슬린, 그리고 아기에게 줄 선물만은 명심하고 챙겼다. 그 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나, 라이언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안하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겨우 찾아오는 나, 그가 처음 이-메일을 보냈을 때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다. 남쪽 역에서 내려 라이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한다. "나 지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거야." "오케이." 잔잔하고 확실한 대답, 지금까지 이-메일로 서로 연락했으므로 처음 들어보는 음성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위를 쳐다보니 아기를 안은 젊은 남자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다. 서로 간의 교감이라고 할까? 안고 있는 아기가 아니더라도, 또 손에 들려 있는 전화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알았을 것이다. 손을 흔드니 라이언도 알은 체한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만났다. 라이언은 서양인에 더 가깝다. 갈색 머리. 초록빛 눈, 그리고 나보다 더 큰 키, 살결은 백인에게서 보는 창백한 흰 살결이 아니라 동양인과 백인 혼혈에서 흔히 보는 상아빛이다. 준수한 용모에 마른 편이고 눈빛이 잔잔하다. 덜렁대지 않고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아기 이름이 에디라고?" "네, 한 살 반이에요." 에디는 엄지손가락을 빨며 다른 손은 아빠의 목을 꽉 잡고 있다. 작은 손이 터질 듯 젖살이 올랐다. 빨간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는데 바짓가랑이가 당겨 올라가 통통한 다리가 정강이까지 노출되어 있다. 숱이 적은 금빛 머리카락이 피부에 찰싹 들러붙어 있다. 나는 아기를 만져보고 싶고, 또 바짓가랑이를 내려주고 싶으나 참는다. 지금까지 남의 아이들을 봤지만, 이토록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에디의 얼굴을 보니 바로 돌아가신 모친의 모습이라,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우리를 닮았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왜 귀하지 않겠는가? 첫 손자인데. 라이언이 자동차 트렁크에 내 가방을 싣는 동안, 나는 에디를 카시트에 앉히고 벨트를 고정한 후 그 옆에 앉는다. 낯선 사람을 보고 울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데 손가락을 빨며 나를 쳐다보고 씩 웃기까지 한다. 메기의 따뜻한 성격을 닮았나 보다. 한국서 가져온 폭신한 베이지색 아기 곰을 손가방에서 꺼내 주니까, 빨던 손가락을 얼른 빼고 두 손으로 덥석 받는다. 라이언이 운전대를 잡으며 묻는다. "오늘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 어디든지 모셔다 드릴게요. 일요일이라 시간이 있습니다." "왓슨 밀 다리에 가고 싶은데." "좋아요. 캐슬린이 이번 주말 당번이라 제가 아기를 봅니다. 우유랑 기저귀도 충분해요." 우리는 애틀랜타 시내를 빠져나와 I-85 고속도로 북쪽으로 달린다. "캐슬린은 무슨 일을 하니?" "간호사입니다. 저는 컴퓨터를 공부했고요." "아기 키우며 내외가 바쁘겠구나." "요새같이 경기가 나쁠 때 직장이 있는 것만도 고맙지요." 에디가 곰을 떨어뜨리고 "얘에……"하면서 손가락질한다. 곰을 집어주며 나는 기어이 아기의 다리를 꽉 잡아본다. 터질 듯 보드라운 그 감촉을 음미하고 있는데 라이언이 백미러로 그러는 나를 훔쳐본다. "우유 먹을 시간입니다. 가방을 열어봐요." 에디는 아기 곰을 나에게 맡기고 우유병을 두 손으로 꽉 잡더니 힘차게 빨기 시작한다. 만족한 듯이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어머니가 에디를 아주 귀여워했겠네." "그럼요. 엄마에게 희망을 주었어요. 에디가 태어나서 일 년 동안 엄마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다가 왼쪽 유방에 붉은 반점을 발견하였지요. 엄마의 암은 희귀한 급성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았을 때는 벌써 마지막 단계까지 갔더군요." 50세에 세상을 떠나려고 메기는 그토록 성급하였던가? 그녀는 우리 관계에서 항상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우리였기에 귀국할 때쯤 나는 그녀에게 냉정했다. 비겁한 줄 알았지만, 우리 두 사람을 위해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친과 내 가족이 있는 한국에 가야 했으며, 메기는 자기 인생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라이언과 에디를 보니, 메기가 어렵던 시절에 도와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그때는 아내와 사회가 두려웠다. 또 30년 전에는 한국이 가난하여 미국으로 송금하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아이를 메기의 가냘픈 손에 맡겼고 풍문으로 결혼했다는 말을 들었다. 라이언이 양부(養父) 이야기를 할 때는 표정까지 부드러워진다. "우리 아빠가 계셨더라면 엄마를 잘 보살폈을 텐데……"라고 하면서. 뻐꾹 뻐꾹,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자신보다 작은 새가 알을 품고 있으면 우는 소리나 둥지의 형태를 잘 관찰하여 새끼가 자라기에 적당한 환경이라 생각되면 어미 새가 잠시 나간 틈을 타서 남의 보금자리에 있는 알을 한 개 땅에 떨어뜨리고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가운데 자리에 제 알을 낳고 떠난다. 작은 새는 그것을 제 알인 줄 알고 열심히 품어 부화시켜 먹이를 물어다 주며 기른다. 뻐꾸기는 산란기에 12-15개씩 알을 낳는데 남의 둥지에 제 알 한 개씩만 맡기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내가 바로 그렇게 새끼를 남에게 맡겨 기른 얌체였다. 에디가 젖병을 떨어뜨리며 잠이 든다. 동양인에 가까운 코, 둥그스름한 볼, 파란 눈을 감으니 에디는 영락없는 우리 아이다. 딴 아이들과 섞어놓아도 쉬이 알 것 같다. 라이언이 운전하는 동안 잠든 에디의 머리를 내 어깨로 받쳐준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그런 때가 있기나 했던가? 에디의 달콤한 젖 냄새를 맡으며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우리는 드디어 왓슨 밀 다리에 왔다. 70미터나 되는 긴 다리에 지붕이 덮여 있는 모양이 눈에 익다. 조지어 주에서 지붕 덮인 다리 중에 가장 길며 미국 전역에서도 몇 번째라고 메기가 옛날에 말했었지. 우리가 탄 차는 지붕과 벽에 가려 어둠침침한 다리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저 멀리 끝에 보이는 햇빛 밝은 곳을 향해 가다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오른쪽 강기슭에 조그만 주차장이 나타난다. "여기서 에디와 내리세요. 주차하고 갈게요." 카시트를 풀고 에디를 안으니 잠을 깬다. 차에서 내리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나를 믿어서인지 에디는 울지 않는다. 아이를 안고 길을 가로질러 강기슭에 있는 풀밭으로 간다. 다리의 유래가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19세기 말, 물레방아와 목재소가 강가에 있어 물자수송을 위해 강 위에 다리를 건설했다. 지붕을 덮은 이유는 다리의 침목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전기가 이 시골까지 들어와 물레방아 동력이 필요 없게 되었다. 시설은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현재 위치로 옮겨져 물레방아와 다리를 보수했다고 한다. "미안해요, 당신한테 이렇게 잔인한 고백을 하게 되어, 오랜 세월 괴로웠소. 이젠 학교에서 은퇴하겠소. 그리고 미국에 며칠 다녀오겠소." 지금 이 다리는 1,000에이커가 넘는 방대한 공원의 중심이 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30년 전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갓 보수하여 새 재목으로 지붕을 얹었는데, 지금은 나무에 연륜이 쌓여 짙은 고동색으로 더욱더 장중하고 역사에 걸맞은 모습이 되었다. 그 긴 다리와 폭포를 배경으로 빨간 티셔츠에 앙증맞은 청바지를 입은 에디가 웃으며 넓은 풀밭을 쫓아다닌다. 라이언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낡은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잔잔한 눈빛, 우뚝한 코, 쉬이 가까이할 수 없는 예리한 인상을 준다. 비행장에서 본 첫인상과 같이 행동거지에 흐트러짐이 없다. 에디가 제 아비를 보고 쫓아가서 안긴다. 에디는 우리 어머니 모습과 메기의 성격을 닮았고, 라이언은 나를 닮았다. 에디는 나를 쉽게 받아들이는데, 라이언은 다르다. "라이언, 강가를 좀 둘러볼게." "그러세요. 마음 놓고 천천히 둘러보고 오세요." 나에게 원망스러운 감정이 있겠지만, 라이언은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하기 싫은 자존심, 너는 너, 나는 나 하는 미국 아이들의 분명함이며 냉정함이기도 하다. 폭포를 지나 강 상류로 올라가니 물결이 잔잔하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강물 위에 쓰러져 있던 곳은 어디쯤일까? 우리는 강물에 드리워진 나무둥치 위를 조심조심 걸어갔었지. 마주 보며 걸터앉아 모친이 삯바느질하며 가난하게 자란 내 과거를 이야기했다. 메기 앞에서는 언어가 문제되지 않았고 이야기가 쉽게 풀려나왔다. 처음에는 영어회화 연습하기 위해 메기를 자주 만났다. 그녀는 늘 내 발음을 고쳐주었고 반복시켰으며 어색한 표현을 지적했다. 다행히 메기 어머니가 미국 동부 출신으로 교육을 받은 분이라, 모녀는 남부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영어를 하는 것은 순전히 메기 덕택이다. 그때 쓰러졌던 그 나무둥치를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것이 아직도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서운하다. 강가를 거닐다 오니까 라이언이 풀밭에 타월을 깔아놓고 에디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일회용 젖은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닦아준다. 내가 저토록 정성스럽게 내 아들 진수를 돌봐 준 적이 있었던가? 통통한 두 다리 사이에 있는 예쁜 고추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라이언, 엄마 묘지에 한번 들렀으면." "여기서 멀지 않아요." 우리는 침례교회 뒤에 있는 묘지에 왔다. 묘지라야 평평한 땅에 메기 존즈 (1959-2009)라고 새긴 작은 동판 한 개다. 태어난 해를 내려보며 새삼스럽게 메기가 너무나도 일찍 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라이언이 만든 장례식 프로그램조차 "날 그리워하되, 떠나게 해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교회가 바로 장례식을 치른 곳이구나." "네, 그래요."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 육중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간다. 라이언이 보냈던 장례식 프로그램을 생각하며 앞자리에 가서 나도 모르게 성당에서 하듯 무릎을 꿇는다. 30년이 넘는 세월, 잊으려고 무한히 노력했고 그래서 잊고 살았다. 그러나 라이언과 에디를 눈앞에 보니, 그 애들이 바로 나의 현실인데 잊으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던가? 물론 한국에서 배신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아내도 나의 현실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교회를 나오는데, 라이언이 말한다. "엄마가 살던 집도 여기서 가까워요." 나는 다시 라이언에게 정신을 집중하며 대답한다. "그래, 가보자." "팔려고 내놨어요." "그렇게 해야지.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느덧 우리는 부동산 세일 푯말이 서 있는 집 앞에 왔다. 소박한 단층집, 대지 가 넓고 뒤에 숲이 있는 집, 옛날에 내가 왔던 바로 그 집이다.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았구나. 가을 햇볕에 양지바른 거실이 눈에 익다. 고객에게 언제라도 보여줄 수 있도록 집은 말끔히 정돈되어 있다. 여기서도 라이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좁은 아파트에 살다가 이곳에 오면 에디가 아주 좋아해요. 여기에는 엄마와 제가 쓰던 장난감이 있거든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에디는 장난감 상자 쪽으로 쫓아간다. 라이언이 나무로 만든 강아지를 꺼내 단추를 누르니까 음악 소리가 나면서 아장아장 걸어간다. 신나게 강아지를 따라다니다가, 음악이 멎으며 거실 한가운데에 뚝 서니까, 에디가 나를 끌고 가 단추를 누르라고 시늉한다. 라이언이 부엌에서 떨그럭거리는 동안 나는 에디와 논다. 한 살 반짜리지만 눈치가 있고 붙임성이 있다. 라이언이 점심 준비가 되었다면서 오라고 한다. 나무로 된 하이체어는 자기가 어릴 때 쓰던 것이라며 에디를 거기에 앉힌다. 라이언이 따끈한 피자를 찬 콜라와 함께 내놓는다. "피자가 웬 거냐? 먹을만하구나." "냉동에 있던 것을 오븐에 구웠어요." 어느새 자기 몫을 다 먹은 에디가 "모아(more)" 하면서 일회용 접시를 내민다. '모아'라는 말을 배웠구나. 내가 웃으면서 조그맣게 잘라 접시에 담아준다. 이 아 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이 집은 얼마나 받을까?" "11만 불에 내놨는데 통 소식이 없네요. 경기가 나빠서." 한국 돈으로 1억 좀 넘는구나. 시골집이라 그렇구나. 어서 이것을 팔아 애틀랜타에 있는 집을 하나 샀으면 좋으련만. 좁은 아파트에 산다니 군색해 보인다. 집 장만하는데 보태주고 싶으나 미국 아이들의 독립심을 생각하면 라이언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할 처지인데, 거절할 것을 알면서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초면에 그런 말을 하면 라이언이 모욕을 느낄 것이다. 점심 후, 라이언이 집을 보여준다. 메기가 쓰던 침실에는 퀸사이즈 침대가 아직도 그대로 있고 작은 탁자 위에는 메기 내외의 결혼사진이 놓여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메기와 중년이 훨씬 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스터 존스, 아버지와 딸 같다. 라이언의 어릴 때 사진이 여러 장 탁자 위에 진열되어 있고 에디 사진도 있다. 얼굴이 몇 번씩 바뀐다고 하더니 라이언이 어렸을 때는 통통하게 살이 쪄서 지금 에디와 같았구나. 라이언이 나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이 방은 엄마가 처녀 시절에 쓰던 방이에요." 창문을 통해 숲이 보인다. 그래, 이 방이지. 내가 처음 여기 왔던 날,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메기가 이 방으로 살며시 나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매달리며 첫 키스를 하던 곳. 그때를 생각하니 온몸이 나른해진다. 오후에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예약한 호텔로 데려다 주면서 라이언이 말한다. "내일은 제가 좀 바빠요." "월요일이니 당연하지. 나는 옛날 친구를 만나면 돼. 이곳에 계속 눌러앉아 사는 친구가 몇 있거든." "목요일에 떠나신다고 하셨죠? 그전에 제가 들를게요. 화요일과 수요일은 낮에도 시간이 있어요. 필요하시면 아무 때나 연락하세요." 캐슬린을 만나고 싶으나 라이언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니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목요일, 인천행 대한항공이 11시 55분에 출발한다. 시간이 넉넉하여 라이언과 나는 공항 내의 맥도널드에서 아침 커피를 나눈다. "커피 맛 좋은데." "그럼요, 맥도널드 커피라고 무시할 게 아녜요. 스타벅스 커피는 비싸기만 하고 너무 진해요. 저는 이게 더 좋아요." 같은 것을 좋아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며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구나. 오늘 라이언은 내가 한국서 가져온 주황색 소매 긴 셔츠를 입고 있다. 나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 옷을 입고 나온 이 미국 아이의 예의라는 것을 안다. 오기 전에 롯데 백화점에서 샀는데 라이언의 피부 색깔에 맞는다. 특이한 색깔로 메기가 저런 셔츠를 내 생일에 사주면서 번트 오랜지(burnt orange)색이라고 말했다. 오렌지를 태운 색깔? 했더니 그녀가 웃었다. 여러 해를 그녀 생각하며 입었는데 내용을 모르는 아내는 나한테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했다. 아내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식 구들의 선물을 사겠다고 백화점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애틀랜타 시내 한국 식당에서 점심으로 갈비 정식을 나누며 우리 집안 얘기를 했다. 라이언이 묻기를, "당신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까?" "당신의 아버지"라는 호칭에 움찔하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해줬 다. "장 티푸스로 돌아가셨는데, 살모넬라 타이피 균에 의한 전염병이라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야." 라이언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에디의 아비로서 중요한 질문이었고, 또 나를 만나려는 이유였다. 떠날 시각이 가까워 온다. 라이언이 손목 시계를 보며 말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미룬 것이 후회돼. 너와 엄마한테 미안해." "다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와서 원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이 사진은 엄마가 한 번씩 꺼내보던 것인데, 인제는 돌려 드리고 싶어요." 라이언이 가방에서 은색 액자 한 개를 꺼내어 나에게 준다. 메기가 왓슨 밀 공원에서 찍은 컬러 사진인데 내가 등산 조끼를 입고 숲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사진이다. 지금과 같이 단풍이 찬란하던 계절에 찍었으며 인물 위주라 나의 모습이 잘 나온 것이다. 숱이 많은 검은 머리,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지금 라이언과 같은 나이였다. 빛나는 젊음, 나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나는 사진을 그에게 내민다. "네가 가지렴." "괜찮아요." 내 사진을 간직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나의 손이 무안하게끔 그것을 받지 않는다. 라이언이 "다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와서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너그러이 봐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애착이 없다는 밀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 모자가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했다. 무슨 애착이 있겠는가? 제 새끼를 위하여 주로 유전적인 측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사무적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이제야 찾아온 나, 그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에서 나를 관찰하려는 것 같다. 우리 사이에는 큰 강이 가로막혀 있다. 그 위에 다리가 지나가고 있으니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게다가 침목이 썩지 않게끔 그 긴 다리 위에 지붕이 덮여 있지 않은가? 기다려 보자.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수상 소감 "늦었지만 작은 결실을 보여드립니다" 저의 어머니 생전에 너는 어째서 단념할 줄 모르느냐고 하셨습니다. 직장 일에 쫓겨 주부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글까지 쓰겠다고 하는 딸이 보기에 안타까우셨겠지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께서 이제 모두 돌아가셨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시리라 믿어요. 좀 늦었지만 이제야 작은 결실을 보여드립니다. 컴퓨터 앞에서 미련하게 세월을 보내는 아내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 준 남편,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 결과를 보여줄 수 있군요. 심사위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더 잘해보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2011-05-23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숙자가 천사를 만났다'

1. 12월 25일, 세상은 밤새 내린 눈으로 인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어있었다. 오전 7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한동수 사장 집 앞에는 신문사와 방송국 등에서 온 기자 수십 명이 모여 진을 치고 있었다. "한동수 사장한테 자식이 있다는 게 사실이야?" "며칠 전에 미국에서 귀국한 딸이 친자확인소송을 신청했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앞면 있는 기자 몇이 모여 추운 날씨에 손발을 구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의 수익 대부분을 소외된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기부해온 한동수 사장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유명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미국에서 온 한 중년여성이 친자확인소송을 신청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 때였다. 대문이 열리더니 한동수 사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고, 모여있던 기자들은 우르르 한 사장 앞으로 몰려가 저마다 품고 있던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한 사장님, 정말 자식이 있습니까?" "그동안 따님이 있다는 걸 왜 숨기셨습니까?" "저희가 알기에는 딸이 한 명 있었지만 사장님이 사십 대 중반이셨던 20년 전에 이미 죽은 걸로 아는데 그동안 거짓말을 하신 건가요?" "무슨 말 못할 숨겨진 로맨스라도 있으신 건 아닌가요?" 무너진 둑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기자들의 질문이 넘쳐났지만 한 사장은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운전기사는 몰려든 기자들을 밀어내며 한 사장이 차에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 사장이 차에 탄 후에도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사장님, 한 말씀한 해주세요?" "소송에는 응하실 건가요?" 하지만, 한 사장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출발할까요?" 운전기사가 말했다. "그래요, 김 기사. 이러다 늦으면 우리 딸이 화낼지도 몰라요." "네, 사장님!" 운전기사는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이윽고, 기자들 사이로 한 사장이 탄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취재거리가 사라지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허탈한 모습으로 장비를 챙기며 저마다 떠날 준비를 했다. 방송국 카메라 장비를 챙기던 한 젊은 남자가 자신의 선배에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선배님, 한동수 사장님이 예전에 노숙자였다면서요?" "그랬지.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 년 전이였을 거야……" 2. 서울역 앞에는 1991년이 이제 겨우 35일 남았다는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하루 종일 내린 폭설 탓인지 거리에는 쌓인 눈과 가로등 불빛만 마주보고 있을 뿐 인적도 차량도 보기 힘들었다. 동수는 자라처럼 자신의 목을 옷 안으로 구겨 넣은 채 마치, 얼굴을 때리는 듯한 칼바람을 피해 뒤로 걸어가고 있었다. 혹 넘어질까 두려워 다리에 힘을 주며 조심스럽게 걷던 그의 시야에 공중전화 부스가 보였다. 발걸음을 멈춘 동수가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자 백 원짜리 동전 한 개가 손에 잡혔다. 장갑이 없어 발갛게 얼어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을 바라보던 그는 마치, 그 동전 하나에 자신의 운명이 걸린 듯 차디찬 공기를 가르는 뿌연 입김과 함께 '제발……'이란 단어를 토해냈다. 전화기에 동전을 넣은 동수는 입김으로 얼었던 손가락을 녹이고는 번호 하나, 하 나를 조심스럽게 누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벨 소리는 캐럴 송 '울면 안돼'이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서언 물을 안 주신데~' 경쾌한 리듬의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동수엔 전혀 경쾌하지 않았다. 이윽고 노래가 멈추면서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동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급히 오른손으로 바꿔 들며 말했다. "창수니? 나야, 동수! 잘 있었어?" "그, 그래…… 근데, 한동수 네가 웬일이냐?" "창수 네가 오늘 전화하라고 했잖아? 오늘쯤이면 돈 줄 수 있다고, 기억 안나?" 동수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참, 내가 그랬었지……" 하지만, 창수는 기억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창수는 동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였다. 2년 전 동수의 퇴직금 중 1억을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3개월만 쓰겠다며 빌려간 창수는 이자는 커녕 원금도 안 갚고 있었다. "야, 동수야. 너도 알다시피 사업하는 사람들은 연말에 결제할 게 많잖니? 이번 엔 꼭 줄려고 했는데 사정이 좀 그렇다. 이해하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창수의 말을 듣던 동수는 어깨가 축 늘어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꽁꽁 언 땅이 꺼질 정도의 무거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동수야 한두 달 후에 다시 전화해라. 그 때는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알았지?" "그, 그래. 그럴게……"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던 동수는 전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혹, 창수가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급하게 수화기를 귓가로 가져갔다. 그러자 수화기에선 전화가 끊어진 줄 안 창수의 호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 마담, 밴드 불러. 오늘 밤 아주 신나게 놀아보자고!' 동수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왔다. 전보다 더 세찬 바람이 불었다. 그는 또다시 목을 옷 안으로 구겨 넣고 바람을 등진 채 뒷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두 걸음 걸었을까?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 들었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울면 안 된다는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그의 눈은 촉촉해졌다. '45년이란 세월 동안 남보다 더 착하게 살았는데 나한테 선물은 못 줄망정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인 걸까?'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길게 내 뱉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동수는 생각했다. '45년이란 세월 동안 남보다 더 착하게 살았는데 나한테 선물은 못 줄망정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인 걸까?'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길게 내 뱉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자 저녁 한 때 멈췄던 눈 발이 가로등 불빛 조명을 받으며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3. 인적이 끊긴 지하도 내에는 노숙자들이 모여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신문이나 빈 박스를 깔고 누워 마치, 등이 휜 새우처럼 자는 이도 있었고, 몇몇은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동수가 주위 눈치를 보며 바닥에 앉으려 하자 소주를 마시던 무리 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말했다. "어이, 한 씨! 이리와 한 잔해?" 동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손을 흔들며 "전, 괜찮습니다. 많이 드세요."하고는 자리에 앉아 잠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수 등 뒤로 이미 얼큰하게 취한듯한 노숙자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행님 요, 점 마는 먹물이다 아 인교? 점 마 대가빡엔 문어마냥 먹물이 꽉 차 있어가꼬 우리처럼 가방 줄 짧은 노가다들 하고는 안 놈니다!" 노숙자 세계에도 서열이 있었다. 노숙생활을 오래 하고 힘센 사람은 지하도 안 쪽에 자리를 잡고, 동수 같은 신참 은 지하도 입구 쪽 즉, 바람이 잘 들어오는 추운 곳에서 자야 했다. 여느 노숙자들처럼 박스를 깔고 가방에서 침낭을 꺼내 덮고 누운 동수의 모습은 마치, 등이 휜 자라의 모습 같았다. 동수는 낡고 더러운 점퍼 안 주머니에서 딸 소연이의 사진을 꺼냈다. 긴 생머리에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살며시 웃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자 그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소연이는 한 번 보고 죽어야 하는데……' 하지만, 노숙자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 때문에 딸에게 찾아갈 수 없었다. 얼마나 잤을까? 동수는 시끄러운 주변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추운 날씨와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그의 몸과 얼굴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쉬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의 자리에서 불과 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 한 소녀와 노숙자 두 어명이 서 있었고, 그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 문디 가시나가 디질라꼬 환장을 했나? 감히 내 지갑을 훔쳐?" 아까 동수에게 먹물이라고 놀렸던 노숙자가 소녀의 머리 체를 잡은 채 말했다. "이거 놓고 말해요!" 소녀는 노숙자의 팔을 거둬내며 말했다. 순간, 동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녀의 얼굴이 마치, 자신의 딸 소연이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그들에게 다가간 동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원래 눈이 나빴던 그는 안경을 잃어버렸지만 돈이 없어 다시 맞추지 못했다. 소녀의 얼굴을 자세히 본 그는 자신의 딸이 아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와 노숙자 사이에 언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노숙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소녀에게 자신과 하룻밤 자자는 제안을 했다. 발걸음을 옮기던 동수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저, 김형. 이 아이가 잘못했어도 어른이 어린 아이랑 잔다는 건 세상 도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이, 먹물! 니는 빠지라! 괜히 그라다 한 데 맞는다!" 노숙자는 소녀의 팔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자 동수는 두 팔을 벌려 그를 막으며 말했다. "김형, 제가 대신 사과할 테니 이 아이는 보내 주세요, 네?" 동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숙자의 주먹이 동수의 얼굴을 후려쳤고, 바닥에 쓰러진 동수 코에선 코피가 흘렀다. "아저씨, 괜찮아요?" 소녀는 무릎을 꿇고 동수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숙자에게 "아니, 사람은 왜 때리고 그래요? 내가 하루 밤 같이 자 준다고 했잖아요?"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아니, 이년 놈들이……"라는 노숙자의 말과 동시에 소녀는 노숙자의 낭심을 냅다 발로 걷어찼다. '억!'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노숙자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소녀는 동수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저씨, 빨리 뛰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란 표정을 짓던 동수는 "어, 그, 그래……" 하고는 허둥지둥 소녀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4. 얼마나 뛰었을까? 바깥 공기는 차가웠지만 동수와 소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뿌연 입김을 내뱉으며 뛰던 소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걸 확인한 그녀는 동수에게 말했다. "아, 아저씨! 이, 이제 그만 뛰어도 되겠어요!" 동수는 숨이 차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땅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만 내 쉬었다. 잠시 후, 둘은 시장 골목에 위치한 24시간 해장국 집에 들어가 앉았다. "난 돈이 없는데……" 동수가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살게요." 그렇게 둘은 이른 새벽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참, 아저씨 소주 드실래요?" 소녀가 말했다. "아니, 난 술 못 마셔." "그래요? 그나저나, 아저씨 배 많이 고프셨나 보네요?" 동수의 뚝배기가 거의 빈 것을 발견한 소녀는 자신의 음식을 동수 그릇에 덜어주며 말을 이었다. "참, 그건 아셔야 되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밥 사준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라는 거! 어서 드세요? 식겠어요." "어? 그, 그래……" 동수는 수저로 음식을 뜨다 말고 잠시 그녀를 쳐다봤다.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믿었던 친구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도 밥 한끼 못 얻어먹는 자신에게 처음 본 어린 소녀가 밥을 사준 게 고마웠고,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미안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인간의 따스한 정과 배려에 동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아저씨, 저한테 반했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 아니 그, 그냥……" 동수는 창피한 듯 허둥지둥 밥을 먹기 시작했다. 둘이 식사를 마치고 해장국 집을 나서자 빗자루 질을 하는 환경미화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리는 젊은이 등 고요했던 길가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아저씨는 우유랑 요구르트 중에서 뭘 더 좋아해요?" 소녀가 말했다. "난 우유가 더 좋은데……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밥 먹었으니까? 디저트 먹어야죠." 그녀는 동수의 팔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는 거니?" "가보면 알아요." 잠시 후, 둘은 인근 아파트 내에 있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아저씬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라고 말한 소녀는 금세 사라졌다. 동수는 궁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벤치에 앉았고, 이내 소녀는 우유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드세요." 소녀가 동수에게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 "너, 설마? 이 우유 훔친 건 아니지?" "훔친 건 아니고 잠시 빌려온 거에요." "뭐? 그게 그거지. 너 자꾸 이렇게 남에 물건에 손 되면 안돼!" "기러기는 암컷이 알을 낳아 품는 동안 수컷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대요, 그리고 앞에서 깨어난 새끼 기러기는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다 크면 둥지를 떠난대요. 한낱 기러기도 그런데 사람인 저는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빠, 엄마라는 소리를 못해봤어요" 그러자 소녀는 손 가락으로 '쉬!' 하는 동작을 하고는 점퍼 속에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 뭔가 적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니?" 동수는 궁금했다. 소녀는 오늘 빌려온 우유 개수와 그 우유를 가져온 집 주소를 적는다고 했다. 아울러, 그녀는 지금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남의 걸 빌리지만 언젠가 능력이 되면 다 갚아주려고 매번 남의 걸 빌릴 때마다 수첩에 적어 놓는다고 했다. "아저씨, 진짜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소녀는 수첩을 접어 점퍼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글쎄……" "진짜 나쁜 사람은요, 충분히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남의 걸 탐하는 사람들이에 요. 전두환 전 대통령 같은 정치인들, 돈이 많은데도 일부러 세금도 안 내는 부자들, 그리고 우리처럼 어린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업주들이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참, 아저씬 이름이 뭐에요? 전 아라에요. 고아라! " "아라? 이름이 참 예쁘구나! 나는 동수야, 한동수." 우연히 만난 둘은 그렇게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올해 17살인 아라는 생후 6개월 만에 생부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진 후,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러다 2년 전 그녀가 15살 되던 해에 그곳 원장이자 목사인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가출, 지금껏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생부에게 버림 받은 그녀는 늘 부모가 그리웠고, 따듯한 사람의 정이 그리워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섰지만,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어른들이 원한 건 그녀의 몸뿐이었다고 했다. 그녀를 위해 무조건 도와주건 동수가 처음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동수에게 밥을 사주었다고 했다. "그랬었구나……" 동수는 측은한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소녀는 "이제 아저씨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고 물었다. "글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던 동수는 처음 본 소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한다는 게 문득,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녀로 인해 오랜만에 느껴본 인간의 따듯한 정이 고마워 과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유복한 중산층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동수는 부모님 말에 순종하며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선을 봐 결혼했다. 성실했던 그는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며 동기들보다 승진도 빨랐다. 그러는 사이 딸 소연이가 태어났고 동수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IMF 사태로 은행권 직원들이 추풍낙엽처럼 감원될 때도 그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40대 초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영어 광풍 때문에 그의 아내는 딸 소연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겠다고 했다. 그는 가족의 참 뜻을 언급하며 반대했지만 아내를 이길 수 없었다. 1년만 다녀오겠다던 아내의 약속은 2년이 되어도 지켜지지 않았다. 동수는 날마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매일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선 그에게 이따금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를 향해 반갑게 달려드는 딸 소연이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어깨는 축 늘어졌고 무거운 한 숨만 나올 뿐이었다. 꿈에도 원치 않던 이산가족이 된 그는 먹는 것 또한 부실해 눈에 띄게 야위어 갔고, 회사에서도 업무 실수를 하는 등 갈수록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이렇게 말랐구나?" 동수의 이야기를 듣던 아라가 말했다. "그렇지? 내가 조금 말랐지?" "아니요, 아주 많이 말랐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녀는 동수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때였다. 아파트 경비원과 한 아주머니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경비 아저씨, 내가 이런 사람들 우리 아파트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파트값 떨어지면 경비 아저씨가 책임질 거에요?"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동수와 아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부녀회장님. 제가 순찰을 열심히 도는데도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일이 생기네요."라고 하더니 동수와 아라에게 빨리 그곳을 떠나라고 했다. 5.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만큼 기분 더러운 일이 또 있을까? 동수와 아라는 매번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그래서인지 아파트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걸었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 있었고 길가에는 사람도 차도 많았다. 전날 눈이 많이 와서인지 날씨는 비교적 포근했다. "아저씨, 그거 아세요?" 오랜 침묵을 깨고 아라가 말했다. "뭐?" "한국 아줌마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유별난지요?" "글쎄……" "어렸을 때 저랑 같이 보육원에 살다가 아주 부유한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정아라는 친구가 있어요." 아라는 그 친구와 보육원에서 가출하기 전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정아는 미국 내에서 손 꼽히는 부자동네에 살았는데 그곳에 사는 한국 아줌마들이 가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미국인 이웃들이 뭐라고 하면 자신들의 잘못은 모른 채 무조건 인종차별이라며 고소하겠다고 방방 뛰었다고 했다. "아저씨, 방금 우리가 쫓겨난 그 아파트에 동남아 근로자나 중국동포가 이사 온다 고 하면 그곳에 사는 아줌마들은 아파트 값 떨어진다며 극구 반대하겠죠?"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동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전 어렸을 때 밤중에 화장실 가는 게 제일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어른인 것 같아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어른들이요!" 동수는 아라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역시 같은 어른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저씨, 우리 짬뽕 먹으러 가요! 전 오늘처럼 기분이 꿀꿀한 날에는 얼큰한 게 땡기거든요." 잠시 후, 아라는 동수를 데리고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동수는 중국집이 아닌 공중전화 부스로 온 게 이상했지만 돈도 없고 배도 고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길 건너편에 있는 중국집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만리장성이죠? 여기 길 건너 편 빌딩 3층에 있는 올림픽 당구장인데요. 짬뽕 두 그릇하고 탕수육 하나만 갖다 주세요. 빨리요!" 동수가 궁금한 듯 부스 밖으로 목을 내밀고 빌딩을 올려보자 그곳에는 정말 올림픽 당구장이란 간판이 걸려있었다. "아저씨 가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라가 말했다. 동수는 궁금했지만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이윽고 둘은 당구장이 있는 빌딩 2층 계단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한 층 더 올라가서 저를 보고 있다가 제가 머리를 긁으면 큰 소리로 '너 오늘 죽었어!'라고 소리치세요. 알겠죠?" "그, 그래……" 동수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여전히 궁금했지만 그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동수가 3층으로 올라가 아래를 쳐다보고 있은 지 십 여분쯤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철 가방을 들고 올라오는 배달원의 모습이 보였 다. 그가 2층에 도착하자 아라가 그를 막아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지금 올림픽 당구장으로 배달 가는 거죠?" "응. 그런데 왜?" "음식 여기다 놓고 빨리 도망가세요. 이거 이 동네 조폭 아저씨들이 시킨 건데요. 음식 늦게 온다고 아저씨 오면 버릇을 고치겠다며 지금 사시미 칼 들고 벼르고 있어요!"라고 말한 아라는 약속대로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그러자 동수는 그녀가 시킨 대로 '너 오늘 죽었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배달원은 얼굴색이 창백해 지더니 철 가방 속에 음식을 잽싸게 내려놓고는 올라온 계단을 한 번에 두세 칸씩 뛰어 도망갔다. 잠시 후 둘은 빌딩 옥상 한 쪽에 앉아 짬뽕과 탕수육을 먹기 시작했다. "넌 정말 머리가 좋구나!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했니?" 동수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 대신 "아저씨,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 먹어본 적 있어요?"라 는 질문을 던지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전 있어요. 보육원에서 나와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배가 너무 고픈 거에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쓰레기 통에 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식중독에 걸려 진짜로 죽을 뻔했어요. 돈이 없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순 없잖아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살아남다니?"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는 부모가 자신에게는 없다고 했다. 그녀는 좋은 집도, 좋은 옷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단지, 부모를 만나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단 하루만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 전 기러기 보다 못한 사람이에요!" "기러기? 그게 무슨 말이니?" "기러기는 암컷이 알을 낳아 품는 동안 수컷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대요.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 기러기는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다 크면 둥지를 떠난대요. 한낱 기러기도 그런데 사람인 저는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빠, 엄마라는 소리를 못해봤어요. 남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겹게 부를 수 있는 그 흔한 아빠, 엄마라는 말을요……" 아라의 맑은 눈가가 촉촉해 졌다. 그러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했 다. "저는 엄마 아빠 만날 때까지 절대로 울지 않을 거에요! 엄마 아빠 만나서 우는 건 행복해서 우는 거라 괜찮지만 지금 울면 제가 너무 초라하고 불쌍하잖아요!" 그녀는 소리 내지 않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걸로 봐서 억지로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동수의 눈도 촉촉해졌다. 동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라 옆으로 가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여전히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깨는 전보다 더 자주 들썩였다. 동수는 미안했다. 그는 이제까지 내 새끼만 안전하고 내 새끼만 잘 먹고 잘 크면 다 인줄 알았다. 결국, 아라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내 새끼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가 안녕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내 새끼도 안녕하고 더 안전할 수 있는 건데 지금껏 그걸 몰랐던 게 미안했다. 그녀는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지켜주어야 할 또 다른 우리였다는 것을 동수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날 밤, 둘은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여기는 왜?" 동수가 물었다. "가끔 잘 때 없으면 이곳에 와요. 화장실에서 씻을 수도 있고 보호자인 척 앉아 있으면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지하에 있는 영안실에 가면 장례 음식도 얻어먹을 수 있어요." 동수는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린 나이에 살아남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몸소 터득하며 힘들게 살아왔을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그녀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쉬 멈출지 알았던 기침은 갈수록 심해졌다. "괜찮니?" 동수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들어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지만 기침은 계속됐다. 머지않아 기침은 멈추었지만 아라의 얼굴을 발갛게 달아 있었다. "괜찮니? 병원에 온 김에 진찰 한번 받아볼래?" "아니, 괜찮아요. 날씨가 추워서 그럴 거에요." "정말 괜찮겠어?" 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후,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응급실 현관문이 열리면서 119 대원들이 침대를 밀고 들어왔다. 침대에는 젊은 청년이 온몸에 피를 흘린 채 누워 있었다. "무슨 일이죠?" 간호사가 말했다. "교통사고 환자인데 급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조용했던 응급실이 순간 급하게 돌아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당직 의사가 나타났고 간호사들도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로 보이는 가족들이 나타나 '제발 살려달라.'라며 병원 관계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특히,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라는 "이게 제가 여기에 오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라니?" 동수는 궁금했다. "오늘처럼 엄마 아빠가 유난히 보고 싶고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이곳에 와요. 저렇게 삶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을 보면 제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거든요!" 6. 시간은 늘 그렇듯 묵묵히 그리고 빨리 흘러갔다. 우연히 만난 동수와 아라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지냈고,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오후, 둘은 서울역 인근에서 종교단체가 나눠준 무료급식을 먹고 있었다. "아, 잘 먹었다!" 아라가 말했다. "오늘은 디저트 안 먹니?" "나, 디저트 끊은 거 몰랐어요? 아저씨 말대로 정말 급한 일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남의 것 안 빌릴 거에요!" 환한 미소와 함께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동수 입가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번 졌다. 그녀를 만나기 전 동수는 한동안 웃는 법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이후로 동수 얼굴에는 미소가 자주 피어났다. 둘은 얼은 몸을 녹이기 위해 역 안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 시간 외로움에 갇혀 있어 말 벗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느껴본 인간의 따듯한 정 때문일까? 동수는 자신이 노숙자가 된 아니,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미국 금융위기로 초래된 한국 내 불경기로 인해 동수는 명예퇴직 당했지만 조기유 학 간 아내와 딸이 걱정할까 바 그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는 친구 창수에게 빌려주고 남은 돈으로 치킨 가맹점을 시작했지만 숫기없는 은행원이었던 그에게 장사는 애당초 어울리지 않았다. 6개월 만에 사업을 말아먹은 그는 매달 미국으로 송금해야 하는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살던 집을 전세로 옮겼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어렵자 동수는 공사판도 쫓아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체격이 왜소한 그는 번번이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기 일쑤였고, 1년 전에는 그나마 어렵게 잡은 공사판에서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그는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야 했고 결국에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노숙자가 되고부터 미국에 돈도 못 보냈고, 그로 인해 면목이 없어 가족과 연락도 못한다고 했다. 그가 "휴, 정말이지 사람 무너지는 거 한 순간이더구나!"라고 말하자, 그녀는 "아저씬 착한 사람이니까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에요!"라며 맑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울러, 동수는 예전에 노숙자를 보면 '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자기가 그 자리에 와 보니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며 그간 노숙자에게 보냈던 자신의 싸늘한 편견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아라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동수에게 건넸다. "이게 뭐니?" "뭐긴요? 보다시피 공중전화 카드죠!" "이건 왜?" "미국에 있는 식구한테 전화하시라고요. 저처럼 고아면 모를까 아저씨는 사랑하는 식구가 있는데 전화를 왜 못해요? 혹시, 아줌마가 무서워서 그래요?" 동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선으로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는 고집도 세고 자신이 원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하 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동수는 결혼생활 내내 기센 와이프에게 잡혀 살았다. "하하! 아니, 무슨 남자가 와이프가 무섭다고 전화도 못해요?" 동수는 손에 쥐인 카드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어서 일어나세요." 하며 동수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윽고, 둘은 공중전화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동수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그렇게 둘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 씩씩했던 아라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더니 그녀는 가녀린 목소리로 "아저씨, 안 돼요! 죽으면 안 되요…" 라고 속삭이듯 말하 고 바닥에 쓰러졌다. 동수는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아라야, 아라야?' 하며 쓰러진 그녀를 흔들어 보았지 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저씨, 자꾸 이러면 전화카드 뺏을 거에요!" 그녀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어릴 적 보육원친구였던 정아에게 전화하기 위해 카드를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동수를 위해 그 카드를 양보하겠다고 했다. "아저씨, 제 맘 변하기 전해 빨리 전화하세요." 그녀는 동수 손에 들려있던 카드를 뺏어 전화기에 집어넣고 수화기를 들어 그에게 건넸다. 동수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서울 역 내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연인이나 식구 단위로 쇼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 하자!" 동수는 굳은 결의와 함께 조심스럽게 번호를 눌렀다. 말은 안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번호를 누른지 10초쯤 지났을까? 동수는 환한 미소와 함께 '여보세요? 소연이니?'라고 했다. 그를 바라보던 아라는 말은 안 했지만 마치,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를 만난 것처럼 밝은 미소로 기뻐해 주었다. 그녀는 오랜 만에 가족과 통화하는 동수 곁에 있으면 혹,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기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로 가 그를 지켜 보았다. 한동안 반가운 표정으로 전화하던 그의 얼굴에 마치, 먹구름이 몰려온 것처럼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지?' 궁금했다. 잠시 후, 수화기를 내려놓은 동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는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동수에게 다가간 그녀는 "아저씨,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 숙여 땅바닥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저씨,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라는 아라의 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한 마리 괴수처럼 '악!'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무작정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저씨, 어디 가요? 같이 가요!" 잠시 후, 둘은 한 빌딩 옥상에 도착했다. 동수는 옥상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모 통이 난간을 붙잡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라는 알 수 있었다. 그 울음이 얼마나 서럽고, 고통스러운 건지…… 남보다 더 힘들고 외롭게 자란 그녀는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 안에 어떤 아픔이 담겨 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아저씨, 맘껏 우세요." 그녀는 동수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래요.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비록, 현실은 바뀌지 않아도 기분은 조금 나아질 거에요." 이윽고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것 같더니 갑자기 그는 아라를 뿌리치며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어!'라고 말하더니 난간을 넘으려 했다. "안돼요!" 그녀는 그의 다리를 잡고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이거 놔!" 하며 동수가 잡힌 발을 털어내자 그녀는 더욱 힘껏 매달렸다. 그렇게 둘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 씩씩했던 아라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더니 그녀는 가녀린 목소리로 "아저씨, 안 돼요! 죽으면 안 되요……"라고 속삭이듯 말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동수는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아라야, 아라야?'하며 쓰러진 그녀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7. 며칠 전 추위를 피해 하루 밤을 보냈던 병원 응급실 의자에 또 다시 동수가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며칠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선 '제발……'이란 단어가 간절함과 함께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간호사의 '고아라씨 보호자분?'이라는 호출을 따라 동수는 의사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의 첫 마디는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였다. 계속된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라의 병은 폐렴이라고 했다. 정상인의 경우 폐의 방어능력이 좋아 무서운 병이 아니지만, 아라처럼 잘 먹지 못하고 노숙 등을 통해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는 심각하다고 했다. 그녀는 합병증으로 늑막염도 생긴 상태고, 균이 혈액 속에 들어가 생기는 패혈증 증세도 보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 제발 우리 아라 좀 살려주세요, 네?" 동수는 의사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아라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은은한 조명의 고요한 병실 안에는 가습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동수는 마스크를 쓴 채 아라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록,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한 달 정도의 시간만 함께 보낸 사이였지만 동수에게 그녀는 어느새 각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수가 은행에서 일할 때 틈만 나면 찾아와 각종 대출을 부탁하던 친구나 지인들은 그가 은행에서 퇴출당하자 모두 모른 척했고, 노숙자가 된 후에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아예 연락처를 바꾼 사람도 있었다. 경제적 몰락, 원치 않던 가족과의 생이별,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에 의한 배신 등 지난 2년간 동수가 겪었던 일들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노숙자인 동수를 '숙자'라고 놀리며 외면했지만 우연히 그에게 찾아온 아라는 분명 마음씨 고운 천사였다! 동수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어둠이 내려와 깜깜해진 창 밖 세상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 불 빛으로 인해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동수는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라고 다들 저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랑 아라는 왜 이럴까?' 그러자 며칠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오늘처럼 엄마 아빠가 유난히 보고 싶고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이곳에 와요. 저렇게 삶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을 보면 제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거든요!' 동수는 고개 돌려 누워있는 아라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라야. 나도 감사할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게……" 그때였다. 하루 종일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던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동수는 급히 그녀 곁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의식을 찾은 듯 그녀의 눈이 떠져 있었다. "아라야!" 동수가 마스크를 벗고 반갑게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답답한 듯 스스로 산소호흡 기를 벗어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안 죽었구나!" 그녀는 아픈 상황에서도 힘들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보다 동수를 먼저 챙겼다. 그녀의 순수하고 진심 어린 배려가 동수 가슴에 스며들자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한줄기 감동이 흘러내렸다. "근데, 아저씨 갑자기 왜 죽으려고 그랬어요?" 질문을 받은 동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자살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수 처는 미국에서 취미 삼아 골프를 쳤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 골프선생과 친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동수가 돈을 못 부쳐 주자 동수 처는 그 남자와 금전거래를 시작했고, 그를 계기로 연인이 되어 지금은 같이 산다고 했다. 동수 처는 한국으로 이혼서류를 보낼 테니 헤어지자며 이별을 통보했다고 한다. 게다가 딸 소연이도 미국이 좋다며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랬었구나! 그래도 아저씨 죽으면 안 돼요. 우리 목숨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거든요." 아라가 말했다. 여전히 그녀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라야, 목사라는 인간이 너를 성추행 했는데도 너는 하나님이 밉지 않니?" "목사는 인간이잖아요. 인간은 나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저씨 절대로 죽으면 안돼요? " 동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아저씨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실래요?'라고 말했다. 또 다시 동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그것은 자신이 평생 그토록 불러보고 싶어했던 아빠라는 단어를 동수에게 불러보아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래. 얼마든지……"동수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라는 소리만 하고 입을 닫았다. 평생 아빠라는 대상을 앞에 두고 말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아…… 아빠!" "그래, 아라야. 넌 이제부터 내 딸이야. 이 한동수의 딸이야." 동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 사랑해요!" "그래, 이 아빠도 우리 딸 사랑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둘의 눈가에 감동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빠, 고마워요. 아무 조건 없이 저를 도와준 사람은 아빠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고맙고 좋았어요. 그러니까 절대로 죽으면 안돼요. 알겠죠?" 그는 말을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라가 약속해달란 의미로 새끼 손가락을 내 밀자 동수는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가 그녀 손가락에 걸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비록,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둘은 서로의 온기를 통해 진심 어린 사랑을 공유한 부녀 사이가 되었다. 딸에게 눈물을 보이는 게 싫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동수는 자신의 손가락에 걸려있던 아라의 손가락이 힘없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순간, 놀라서 고개를 들자 해맑은 눈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마치, 편안히 잠든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불길한 마음이 엄습했다. 동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동수는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목소리로 간호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간호사, 간호사!" 잠시 후, 간호사와 의사가 달려 왔지만 아라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성탄절 새벽, 아라는 그렇게 동수와 헤어지고 말았다. 8. 집 앞에 몰려온 기자들을 털어내고 묘지에 도착한 김 기사와 한 사장은 눈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사장님,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앞서 걷던 김기사가 말했다. "내 나이 육십 대 중반이지만 아직까진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게. 참, 김기사 짬뽕 은 챙겼나?" "네, 사장님. 안 그래도 식을까 바 보온병에 담아왔습니다." "고마우이. 우리 딸 아라가 짬뽕을 좋아했거든." 잠시 후 둘은 아라가 잠든 묘지 앞에 도착했다. 동수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아라야, 아빠 왔다. 잘 있었니?"라며 딸에게 인 사를 건넸다. 그는 김기사와 함께 잠시 묘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김 기사가 보온 병을 건네자 동수는 정성스럽게 뚜껑을 열어 아라 앞에 놓으며 말했다. "아라야, 이 아버지가 짬뽕 사왔다. 날씨도 추운데 식기 전에 많이 먹어라!" "참, 사장님. 이거……" 김 기사가 낡은 수첩 하나를 한 사장에게 건넸다. "이제 다 갚은 건가?" 수첩을 받아 든 한 사장이 말했다. "네, 마지막 한 사람을 못 찾아서 시간이 좀 오래 걸렸는데 며칠 전에 만나서 다 갚았습니다." "이자까지 더해서 잘 갚아드렸지?"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수첩은 오래전 아라가 빌려 먹은 음식과 그 음식을 빌려온 집 주소가 적혀있는 수첩이었다. 동수는 한동안 그 수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첩 위로 맑게 웃는 아라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야, 네가 이 아버지한테 전해준 순수한 사랑과 따듯한 정, 내가 너한테 가는 그날까지 이 세상 사람들한테 더 많이 전해줄게! 사랑한다, 아라야!" -끝- 수상 소감 "순수했던 과거 돌아보게 돼 감사" 중학교 1학년 때 저희 담임은 여자 국어선생님이었습니다. 화장기 없는 청순한 얼굴 그리고 긴 생머리 남자중학교였던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숙제였던 일기도 열심히 쓰고 아울러 그 선생님께 언젠가 제 소설 책을 선물해 드리겠다던 순수 충만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한 중년에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순수했던 제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한데 제게 '당선'이란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살다 보니 돈과 명예를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면 배 고프다는 주위 만류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지만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Better late than never)'라는 말을 상기하며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것만이 제게 능력주신 하나님과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중앙일보 그리고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모두에게 진정 감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머지 않은 시간 내에 제 소설 책을 들고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보리라는 순수한 감정의 싹을 뿌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5-23

[중앙신인문학상] 심사평-단편소설 부문…면밀한 구성·생략되고 집약된 문체 돋보여

중앙신인문학상에 응모한 40여 편의 작품들이 예년보다 더 참신한 소설적 허구와 의식 구조와 구성에 접근 신선하고 매력있는 테마와 탁발한 소재로 이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며 인간적 냄새와 희비애락을 동반 아름다운 비극 휴머니티한 감동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좋은 소설이란 다음 장에 무엇이 나오나 서둘러 넘기게 되고 제목은 소설의 상징이며 암시임에도 대부분의 제목들이 완만 진부 소설다운 무드나 복선에 미흡. 충분히 소설로 승화될 소지가 있음에도 쉽게 신변 이야기나 수기로 주저앉아 장고 끝에 6편을 가리고 다시 최종의 3편으로 집약한다. '돌다리에서 다시 찾은 봄'(고미군)은 소설을 넉넉히 쓸 수 있는 문장력과 서술력 이야기를 대동하면서도 끝내 허구가 없는 논픽션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이 흠 언젠가 소설기법을 익히는 날 소설가로 등단 되리라는 기대로 선외(選外)로 돌린다. '지워진 도시'(배효석)는 추리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제목. 신호등 앞에서 번개처럼 교차한 30여년 전에 흘러간 여인의 환영 공간을 초월해 가는 장정들의 고달픈 병영생활. 강원도 술집에서 만난 여자를 둘러싼 서 병장과 장 상병과의 삼각관계 방황하는 한 여인의 애상(愛傷)을 비교적 리얼하게 묘사했으나 지루한 내용 등장인물의 복잡함이 선외로 돌리게 한다. '코파카바나에 뜨는 달'(김은희)은 동성애를 다룬 이채로운 작품 현대적 이슈와 발랄한 현대감각이 자유분방한 편집실의 대화로 신선한 맛을 풍긴다. 코파카바나를 동경하는 유미와 은미의 최종의 열애의 장(場)에 약속대로 은미가 올 것인가 무슨 영화의 라스트 신을 연상. 세파와 편견에 맞선 내면 싸움의 결미가 여운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나 서술적 설명 상황에 그쳐 동성애의 사회적 반목 갈등 위기를 심도있게 살려내지 못해 선 외로 미룬다. '숙자가 천사를 만났다'(이상호)는 노숙자 40대 중반의 동수와 10대의 고아 아라와의 얽힌 배 고프고 추운 한데에서 노숙하는 처절한 사회상과 삶의 비화를 밀도 있게 절묘한 구성으로 갈등과 위기 역설적 반전 절정을 이루면서 군더덕지 없이 차분하게 전개되나 발단 부분의 비약이 다소 눈에 걸린다. 칠전팔기 끝에 재기한 동수가 '아라'가 남긴 메모장의 '빌려 먹은' 음식값을 주인에게 갚는 극적인 감동 훈훈한 휴머니티. 과거와 현재가 밀착 오버랩되는 동화 같은 순정소설. 면밀하게 짜인 구성 생략되고 집약된 문체의 묘기가 돋보여 "당선작"으로 천거한다. '월광곡'(권이조)은 일정한 이야기를 저항이나 기복없이 무난히 끌고 간 기량이 돋보인다. 플라토닉한 민영우 교수와 제자 윤명주 간의 운명적 러브 스토리. 신혼 초에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뒤로 미국에 와 환상과 몽유에 시달리는 명주의 고독과 절망. 낯선 미국땅 무명의 공원 벤치에서 남편의 부보를 듣고 하얀 소복으로 새우처럼 구부려 죽어간 명주의 비애가 베토벤의 월광 곡을 타고 흐른다. 박상기 교수와의 일종의 반윤리적 위기 내적 갈등이 어떤 모티브에서 극복되는 반전의 장면이 아쉬워 '가작'으로 머물게 한다. '건너야 할 강'(박숙자)은 제목이 주는 소설다운 매력 무엇이 있겠구나 하는 암시. 교수의 지적(知的) 고뇌가 점철하는 심리적 작품. 흔한 멜로나 센티에 빠지지 않고 작품을 일정한 수준으로 격상시킨 냉철한 문체. 미국 연인 '메기'에 대한 사모곡. 서먹한 친자(親子)확인의 묵시. 플롯이나 진행이 원활하고 부딪치는 동서양의 윤리관 문화의 충돌 초로 교수의 공허와 이질감 자괴심이 사막의 선인장처럼 고고하다. 아내 교수와의 냉랭한 대극이 좀더 깊이 터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작'으로 천거한다.

2011-05-23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없어 아쉬움…지속적인 새로운 도전 부탁

2011년 미주 중앙일보 논픽션 공모에서 아쉽게도 최 우수작이 없이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 낫다'(윤재현)와 '희망봉에서 자라는 나무'(흥을미) 두 작품이 가작으로 뽑혔다. '대한민국 사랑"은 불명예 하야한 건국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촉구하는 미주 한인 인사들의 활약을 기록한 글이다. 한국 역사와 후손들을 위해서 민족사적인 재고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소재를 간절한 염원을 담아 피력하고 있다. 절제된 감정 정확한 정보들로 보완되어 한 권의 회고록으로 엮어지기를 기대한다. '미 육군 훈련소 입소기'는 언어 소통이 부 자유스런 입소자가 미 육군 훈련소에서 경험하는 개인적인 모험사건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언어 불 소통이라는 단편적인 하나의 명제에서 벗어나 더 폭 넓은 관찰이 가능했다면 수작의 논픽션이 쓰여 졌을 것이다. '희망봉에서 자라는 나무'는 외지에서 암 투병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한 번뿐인 삶을 긍정적으로 치열하게 대처하는 글쓴이의 세찬 맥박이 느껴진다. 문장도 정확하고 서술의 힘도 있다. 그러나 문학적인 감수성보다 사실성이 요구되는 논픽션에 소설적인 도입부는 유의했어야 할 점이다.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하와이로 이민 온 황해도 실향민이 인생의 힘든 경험들을 이겨낸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안정된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북한 이후의 삶의 애환을 좀 더 밀도 있게 내면의 깊이를 담아 표출해 내었더라면 하는 미진함이 있지만 실향민의 애잔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노숙자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리의 천사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느린 내용 전개로 인해 건강한 노인들의 재혼 문제를 다룬 '새로운 출발'은 개인사 적인 체험에 머무른 점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이민 생활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경험한 소재들을 사실적 감동으로 엮어내기 위해 수고하신 한 분 한 분의 공모자들의 노고에 치하를 드린다. 지속적인 새로운 도전을 부탁 드리고 싶다.

2011-05-19

[중앙신인문학상]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 낫다

구월산 유격대 배를 타고 탈출한 북한 호놀룰루에서 접시닦이 하며 한증막 같은 곳서 갖은 고생 겪었지만 토지개혁후 현물세로 다 뺏기고 송기죽 해먹던 북한 생각하며 버텨 나는 실향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탈북자다. 1951년 신록이 우거지는 5월 중순 나는 황해도 몽금포 근방의 인민군 해안경비대의 감시망을 어렵게 빠져나와 탈북에 성공했다. 인천에 정착한 후 우연한 기회에 한 미군 장교를 만났다. 그가 도와줘서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취직되어 야경주독(나는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했다)으로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육군본부에서 안전고문관 통역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안전사고 방지업무 발전에 조언을 제공하는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호놀룰루로 이민했다. 배운 것이라곤 안전관리뿐이라 하와이 주 직업안전과 OSH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검사원으로 취업하기 위해 지원서를 제출한 다음 임시직을 찾아 나섰다. 신문에서 식당 부 매니저의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와이키키 근방의 철판구이 일식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나는 일본말을 좀 해서 즉시 채용되었다. 그런데 말이 좋아 부 매니저지 실상 월급은 쥐꼬리만하고 손님안내 계산서 정리 심지어 접시닦이까지 하는 잡역부였다. 인내심의 뿌리는 북한 가장 힘들던 일이 접시닦이였다. 필리핀계 접시닦이가 꾀를 부리고 나오지 않는 날은 내가 혼나는 날이다. 큰 접시와 씨름을 해야 되니… '스테이크는 크고 무거운 접시에 담아 먹어야 멋과 맛이 있나?'하고 투덜거리며 한증막 같은 구석방에서 고무 앞치마를 걸치고 세척기에서 접시를 빼내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되나?' 바로 옆 와이키키 해변의 야자수 그늘에는 반나체의 남녀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너무 덥다. 그만둘까?'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출근했다. '주 정부에서 소식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지.' 다행이 나에겐 인내심이 있다. 그 인내심의 뿌리는 북한이다. 접시 닦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북한에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것보다 낫다. 식량이 모자라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로 돌아갔다. 돌아온 마을 세포위원장 전쟁이 끝나고 남북통일이 되는가 했더니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작전상 후퇴를 했다고 한다. 다시 빨갱이 세상이 되었다. 밀물에 구멍 속으로 숨었다가 썰물에 눈을 곤두세우고 기어 나오는 갯벌의 게들처럼 빨갱이들이 고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우리 집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윤 할아버지 계십니까?" 분명히 우리 마을 노동당 세포위원장의 목소리다. 그는 토지개혁 전 우리 집의 소작농이었다. 우리가 그를 박대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지주인 우리 집 마당에서 곡식을 타작할 때 알맹이가 다 되면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기 위하여 소작농에게 말을 잡게 하고 "너 한 말 나 한 말" 두 더미로 만들고 할아버지는 아직 나누지 않은 나머지 더미를 소작농에게 보너스로 줬다. 그는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토지개혁 후 주객이 바뀌고 또 현물세납부 초과달성의 중압감에 사로잡혀서 그런지 그는 유별나게 우리 집 논밭의 벼나 콩이 잘 된 장소를 골라 현물세를 계산했다. 땅 1평에 서있는 벼 알맹이 수를 세어 전체면적의 수확량을 계산하기 때문에 농부들은 세포위원장이 어느 장소를 잡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벼가 잘 되고 잘 되지 않은 중간을 잡는 것이 원칙이지만. 할아버지가 왜 제일 잘 된 장소를 잡느냐 항의하면 그는 고개를 돌리고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는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도 현물세를 납품시켰다. 한 해는 텃밭에서 타작한 반들반들 기름지고 통통한 팥을 몽땅 다 현물세로 납품하게 되었다. 공들여 타작한 그 팥을 현물세 가마니에 담아놓고 몇 되 되지 않는 마당 위의 팥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 고장에서 팥은 주식인 좁쌀과 섞어 먹어야하는 빼놓을 수 없는 낱알이다. 말로만 현물세가 25%이지 곡식이 잘 된 곳을 골라 현물세를 산출하므로 실제로 50% 이상을 바치면 춘궁기에 식량이 모자라 우리 식구는 저녁에 얼굴이 비치는 죽을 먹어야 했다. 아침에 죽을 먹으면 그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들과 산이 얼어붙어 풀이나 나물을 뜯어오지도 못하고. 모자라는 식량을 보태기 위하여 나는 마을사람들과 뒷산에 자라고 있는 사람 키의 어린 소나무 가지의 속껍질을 벗겨다가 햇볕에 말려서 절구에 찌여 가루를 만들어 좁쌀이나 강냉이 쌀에 섞어 송기(松肌)죽을 쑤어 먹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자주 먹으니 송진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다. 구역질이 난다. 사람을 송충이로 만들어버리는 현물세… 이 열성 세포위원장이 마을 유지인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온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안방의 벽장에 뛰어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아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내가 숨은 이유는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훈련소로 끌려가던 중 도망친 죄(?)가 있기 때문에. 그는 우리 마을의 병사업무까지 관리하여 자기가 서명한 징집영장을 우리 집으로 가져왔었다. 그는 우리 마을의 "군주"였다. "할아버지 절 받으십시오." 잘 먹지 못해 그런지 얼굴이 거무칙칙하고 깡마른 그는 미소를 띄우면서 말한다 "지금 구월산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아이고! 추운 겨울에 고생 많았지."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의 남루한 솜바지 허리춤에는 두 개의 수류탄이 매달려있다. 총도 없이 빨치산 생활을 했으니. 유엔군이 빠른 속도로 북진하자 미처 철수하지 못한 인민군 패잔병과 황해도의 지방 노동당 간부들과 내무서.정치보위부원들이 천연요새인 구월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네 추위도 추위지만 배고파서 혼이 났습니다. 하루에 날 콩 몇 알씩을 세어 먹으면서 연명했으니까요. 폭격 때문에 불을 피울 수 없었지요. 그래도 김일성장군의 항일유격대의 혁명정신으로 배고픔을 이겨냈습니다." 세포위원장이 떠난 다음 나는 벽장에서 내려왔다. 큰일났다. 그가 텅 빈 자기 집에 가서 노부모와 아내 그리고 동생들이 모두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힐까? 누가 그의 가족을 학살했나? 평안도에서 강제이주 되어 말없이 "북녘 땅 해방의 날"을 기다리던 사람이 우리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앞장서서 반공 치안대원들과 합세하여 세포위원장 가족을 공동묘지 옆 흙구덩이로 끌고 가서 잔인하게 학살했다고 한다. 세포위원장이 나를 보면 가만 놔두지 않을 것 같다. 집 옆에 파 놓은 땅굴 속에 몽금포에서 온 목사님과 숨어 있었다. 김씨 왕조의 지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형제 자매 그리고 어머니, 왜 꿈에도 보이시지 않습니까? 30일 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해요. 어머니, 당신 기도의 힘으로 저는 잘 있습니다. 북한을 무사히 탈출해 하와이로 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다린 60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어머니 보고 싶어요. 30일의 약속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반공 유격대를 나르는 배가 선창가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귀띔해주었다. 탈북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 어머니에게 유엔군이 북상하면 30일 이내에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좁쌀 한 말을 메고 어머니와 같이 셋이 그 선창가로 숨어들었다. 바로 앞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 선창가에는 후방교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반공유격대원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낼 수 없다. 인민군 해안경비대 초소가 바로 옆에 있다. 수일 전에도 가까운 산 정상에서 해안경비대와 유격대간 총격전이 있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바지저고리에 카빈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소년들이 어떻게 막강한 인민군과 싸웠나? 그들은 투철한 반공정신과 익숙한 지형 이외에 믿는 것이 또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맥아더 장군이 반드시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너는 이남으로 가야 산다. 너 위해 기도할게"라고 마지막 귓속말을 주셨다. 그 선창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언제 어디서 해안경비대가 나타날지 모른다. 드디어 배는 떠났다. 행선지는 백령도보다 가까운 초도였다. 전쟁 당시 유엔군이 유격대 전초기지로 사용하던 진남포 앞의 작은 섬이다. 우리는 삐걱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바가지로 바닷물을 떠서 노축에 부어가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좁은 해협을 빠져나왔다. 바다로 나오니 마침 바람이 잘 불어 돛을 달고 삽시간에 초도에 도착했다. 그 섬은 피난민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양지 바른 언덕에 소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억새풀을 덮어 움막을 만들었다. 산에 올라가 나물을 뜯고 바닷가에서 파래를 뜯어다 국을 끓이고 조밥을 해먹었다. 먹고 자는 문제는 그런대로 해결되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다. 입은 옷 그대로 나왔으니. 세탁할 물이나 비누도 없고. 이가 꼬이기 시작했다. 머릿니도 생겼다. 깔끔하신 어머니 손끝에서 자란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죽어도 좋으니 고향에 가서 죽자. 나는 외골수로 생각하는 마음이 좁은 사람이다. 어머니한테 가고 싶은 일념에 사로잡혔다. 마침 육지로 가는 유격대 배가 있어 얻어 타고 초도를 떠나서 장산곶을 향하여 절반 가량 갔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선장이 장산곶 마루를 가리키며 "검은 구름이 지는 해를 덮었습니다. 폭풍이 올 징조입니다. 그냥 가다간 모두 죽으니 배를 돌려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초도로 돌아왔다. 생사의 전환점이었다. 어머니 기도의 힘은 기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검은 구름을 보내서 지옥으로 가던 나를 구출했다. 만약 북한으로 돌아갔다면 나는 체포되어 남한이 보낸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지 않았으면 아오지 탄광으로 쫓겨나 굶어 죽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꾼다. 북한의 우리 마을 뒷산에서 내무서원들에게 쫓겨 도망하려고 뛰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 애쓰다 잠꼬대를 하면 아내가 흔들어 깨워준다. 그것이 꿈인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좋은 남가주 부에나 파크에서 꿈을 꾼 것도… 미소연습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지 몇 주 후 지배인이 나를 불렀다. "어제 저녁 회장님이 우리 식당에 암행시찰을 나왔다 식당 현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손님을 접대하고 있는 당신을 보고 나에게 와서 노발대발하며 당신을 해고시키래." 그는 회장에게 사정하여 미소연습을 하는 조건으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허락을 받았단다. 팔자에 없는 미소연습을 하라니 정말 웃긴다. 괜히 헤죽헤죽 웃으면 실없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거울 앞에서 미소연습을 시작했다. 연습도중 아내에게 들켜 얼마나 웃었는지 바지 앞이 다 젖었다. 아내가 미소연습의 코치가 되어주었다. "에이 이 아이 오우 유 입을 크게 벌리세요" 초등학교 선생이 학생들에게 말하는 식으로. "눈도 같이 웃어주세요. 당신이 눈웃음을 치니 매력이 넘쳐 여자들이 쫓아다니면 어떡해?" 미소연습의 효과는 빠르고 확연했다. 빨간 코트에 하얀 바지를 입고 테이블 뒤에서 눈웃음을 치며 손님을 접대하는 나의 모습이 꽤 매력이 있었나 보다. 스모선수처럼 몸집이 크고 헐렁한 무무를 입은 하와이안계 여자들이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하이 내가 오늘 하와이식 인사를 해줄게"하며 달려들어 내 볼에 키스를 퍼붓는다. 징그러웠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은 성적 학대라고 했는데… 안전검사원의 수난시대 원치 않는 키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주정부에서 채용통고가 왔다. 나는 가장 인기가 없는 단속계의 안전검사원으로 채용되었는데 주로 개인 기업체나 공사장을 검열하여 안전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위반통지서와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사업체를 단속하거나 벌금을 부과시키는 검사원을 싫어한다. 특히 소자본으로 간신히 운영하는 영세업체인 경우 초기 실무 교육을 마치고 첫 안전 검사를 나간 곳이 붉은 흙먼지가 불고 파인애플 냄새가 코를 찌르는 Waipahu 옆의 아파트단지 공사장이었다. 웬일인지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기웃거리다 보니 몸집이 큰 하와이안계 목수가 혼자서 이층에서 웃통을 벗고 망치질을 하고 있다. 건설공사장에서 윗옷을 벗고 일하는 것은 주 안전규정 위반이다. 현관으로 가서 나는 신분증을 보였다. "주정부 안전검사관인데 당신 윗옷을 입으시오." 그 목수는 나를 한참 째려보더니 "You son of bitch get a fxxx out here or I'll smash your brain with this."라고 하면서 망치를 번쩍 든다. 저놈을 어떻게 해야돼나. 싸우지 않으려면 도망가야 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까. 그곳을 빠져 나와 전화로 단속계장에게 보고했다. 항상 미소를 띄우는 일본계 계장은 "망치로 맞았냐"고 묻는다. "아니요"라고 했더니 "맞지 않았으면 됐지"라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편안하다. 이는 분명히 공무방해인데. 하와이는 무법천지인가? 계장을 무시하고 과장에게 보고할까 망설이다가 '에라 참아라 북한에서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 낫지!' 다음은 작은 일식식당의 검열이었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모든 일본식당과 같이 내부가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각종 고급양주가 진열되어있는 카운터 뒤에 앉아있는 주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대머리며 풍채가 좋으나 거만하게 보였다. 나는 안전 검사의 목적과 고용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하여 설명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주인은 정색을 하더니 "누가 당신을 우리 식당에 보냈소?" 그는 계속하여 "지금 오아후 섬의 건축공사장에서 많은 사람이 안전사고로 죽거나 다치고 있는데 그 공사장을 검사하지 왜 마마와 파파가 경영하는 이 작은 식당을 검사하나? 이건 주 예산 낭비야." 그는 내가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어떤 한국 사람은 중국 사람으로 보는데 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가보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안전검사를 내가 거부하니 검사를 하려면 법원 영장을 떼어오시오!"라고 나를 뚫어지게 본다. 그의 얼굴에서 '네 악센트를 들으니 엊그제 호놀룰루 공항에 내린 최근 이민자 같은데'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일본 놈이 나를 한국 사람이라고 깔보나? 내가 왜 이런 직업을 가졌나? 차라리 접시를 닦는 것이 낫지. 그래도 북한에서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는 낫지!' 비가 오면 장마가 온다더니 병아리 검사원인 나에게 계속 어려운 일이 주어졌다. 혹독한 훈련과정인가? 이번엔 안전사고 조사다. Oahu Sugar회사(폐업함)에서 종업원이 사탕수수 세척기를 작동하다 손을 다친 사고다. 종업원이 세척기를 완전 정지시키지 않고 수리를 했으므로 안전규칙 위반이다. 수 천 달러의 벌금을 규정대로 부과했다. 회사는 과도한 벌금에 이의를 제기하고 비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그런데 회사 회의실에 모인 사람의 숫자가 놀랍다. 부사장을 비롯하여 법률고문 변호사 안전과장 정비과장 노동조합 간부 등 십여 명이 말발굽 형으로 나를 에워쌌다. 인민재판을 받는 기분이다. 나는 먼저 벌금의 근거에 대하여 설명했다. 칼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변호사가 따진다 "종업원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인데 왜 회사에 많은 벌금을 부과했나요?" "종업원 부주의는 불충분한 감독이며 불충분한 감독은 회사의 책임입니다."라고 얼버무렸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신이 없다. 나는 그들의 불평을 상부에 보고하여 벌금을 낮추어보겠다고 그들을 달래고 가시방석과 같은 자리를 뛰쳐나왔다. '하여간 북한에서 송기죽을 먹는 것보다 낫지!'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끝이 있게 마련이다. 나를 4년간 괴롭히던 검사원직을 떠나게 되었다. 안전규정관리직에 공석이 생겨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외근을 하지 않는 사무직이다. 이제는 무지막지한 목수에게 망치로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안전검사를 싫어하는 사업주의 일그러진 얼굴을 안 보아도 된다.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싶다. 한데 단속계장이 정말 춤추고 싶은 소식을 준다. "미스터 윤 그동안 수고 많이 하고 영전하는데 선물을 하나 줄게." '무슨 물건을 주려나?' "Mauna Kea 정상의 다국적 천문대와 Hilo의 한 업체 검사가 있으니 2박 3일의 하와이 섬 출장을 다녀오시오." 참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가 보다. 세계 최고봉에서 넋두리를… Mauna Kea는 눈이 쌓여있는 날이 많아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White Mountain"으로 불리며 바로 아래 활화산 Mauna Loa와 쌍 축을 이루는 영험의 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4륜 구동 지프를 타고 두 산을 가로지르는 "말안장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날씨가 일 년 가운데 300일이 청명하여 공기가 맑기로 세계 최고지만 고산증세로 숨이 가빴다. 자동차나 사람이나 산소가 희박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오니주카 센터에(우주선 탑승원으로 순직한 일본계 하와이안의 이름) 들려 고도적응 휴식을 약 한 시간 취한 다음 천문대에 도착했다. 그 천문대는 풍부한 자금으로 운영되고 안전관리업무가 거의 완벽했다.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어 공무원윤리규정을 어기고 스파게티와 후식으로 파파야를 얻어먹었다. 방금 나무에서 따왔나 입 안에서 녹는다. 검사를 마치고 천문대 옆의 벤치에 혼자 앉아서 향긋한 코나 커피를 마시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사방의 바다를 둘러본다. 바로 위의 하늘이 손에 닿을 것 같다. 두 손을 들어본다. 아름다운 은빛 하늘이다. 짓누르던 검사원의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더 아름다운가? 해발로 따져 세계에서 가장 높은 Mauna Kea 정상은 천당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아닌가. 천당과 지옥이 지척이다. 몇 년 전엔 와이키키의 한 지옥에서 땀을 흘렸는데. 이 태평양 끝에도 백성들을 굶기는 김씨 왕조의 지옥이 있다. 그 지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형제자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보고 싶어요. 왜 꿈에도 보이지 않습니까? 어머니와 30일 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해요. 저는 잘 있습니다. 어머니 기도의 힘으로 북한으로 가지 않고 저는 지금 하와이 섬 Mauna Kea 정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실향민의 눈물 한국에서 요즘 780대 실향민 노인들이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가슴이 아프다. 이들은 이산가족 상봉자 추첨에서 잇따라 떨어진 것을 비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자살을 할까? 많은 실향민 1세가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혈육을 만나는데 왜 추첨이니 정부의 허락이 필요한가? 언어도단이다. 지구상에 왜 이렇게 모진 일이 있는가? 전쟁이 끝나면 가족들이 다시 상봉하는데. 중국과 대만의 이산가족은 언제나 상봉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인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북한공산당은 인정사정없는 최상급의 악질 공산당이다. 어느 미군 장성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보다 언제 어떻게 붕괴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루 속히 그 독재정권과 분단의 장벽이 무너져 내가 살던 고향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 얼싸안고 조상 묘에 성묘하고 천마 작약 당귀 등 약초를 캐러 뒷산에 올라가고 싶다. 마음대로 남북의 방방곡곡을 왕래할 수 있는 그 날을 우리 실향민은 지난 60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기다렸다. 하나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2011-05-19

[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가작…25초 간의 걸음마

이른 새벽잠이 깼다. 다시 잠을 청하려다 연적에 물을 채우고 먹을 간다. 방 안 가득 번져가는 먹향. 화선지를 펼쳐 놓는다. 硏露題詩潔 이슬로 먹을 갈아 시를 정결하게 쓰고 消氷煮茶香 얼음을 녹여 차를 향기롭게 끓인다 당나라 시인 요합(姚合)의 시구가 마음에 든다. 이슬을 받아 먹을 간다는 옛 선인들의 풍류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화선지 위로 붓을 들어 호흡을 가다듬고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써보지만 붓이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 화선지 이십여 장을 허비하고 그 중 나은 것으로 골라 낙관을 찍었다. 뻐근한 어깨와 허리를 펴면서 창밖을 본다. 어제 밤부터 조금씩 내리던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이른 아침 산책 나온 강아지가 앞서가는 주인을 충직하게 따라간다. 점점이 생겨나는 발자국이 공들여 찍은 낙관처럼 선명하다. 두어 해 전에 내가 사는 시애틀에 많은 눈이 내렸다. 3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했다. 마침 그 때 친구의 초대를 받은 나는 눈길에 자동차를 운전할 엄두가 나지않아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정원의 잔디밭과 보도의 구분이 사라지고 포근한 목화 이불을 덮은 듯했다. 차고에서 미리 내다 세워 둔 아들의 차까지는 15미터쯤 될까. 높낮이의 구분이 안 되는 눈길은 무릎까지 빠질 것 같아 머뭇거렸다. "엄마 제 손을 잡고 발자국을 따라 걸으세요." 반백이 된 아들이 아직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언제 들어도 정답고 포근한 말이다. 아들은 체격도 좋지만 유난히 손발이 크다. 키가 작은 나는 그 넓은 보폭을 따라 걷기가 힘들었다. "보폭을 좀 줄여다오." "예" 싱긋 웃으면서 뚜벅뚜벅 걸어 가는 아들의 발자국은 눈 속에 준비해둔 빈 장화가 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눈 장화 속에 내 발을 넣었다. 아들의 커다란 손을 잡고 한걸음씩 차 앞으로 갔다. 아들과 함께 걸어간 시간이 25초쯤 되었을까. 뒤 돌아보니 두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이 한 줄이다. 순간 뜨거운 것이 왈칵 치밀어오르면서 울대뼈가 떨려왔다. 나는 아들을 꼭 껴안았다. 내 눈에 맺힌 이슬을 보았을까 이번에는 아들이 나를 꼬옥 안았다. 가슴에 닿은 아들의 온기가 온몸에 번져왔다. 아들의 훈기 속에서 잊혀진 줄 알았던 남편을 보았다. 내게만 보여주던 선하고 장난기 어린 웃음. 그의 짙은 그림자를 떨치려고 이 먼 미국 땅으로 도망치듯 왔는데… 아련히 떠오르는 남편의 모습을 딛고 살아나는 생생한 기억들. 겨울 나들이로 꽁꽁 언 내 손은 언제나 남편의 외투 주머니 속으로 붙잡혀 들어갔다. 그 큰 손은 내 작은 손을 주물러 녹여주곤 했다. 화롯불이 따로 없었다. 마냥 따스하고 행복했다. 그는 작은 일에도 나를 즐겁고 기쁘게 해주려고 애썼다. 그런 남편의 베풂을 아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세상의 모든 아내가 으레 받는 대우라고 알았다. 허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말 없는 남편의 소박하고 절절한 사랑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남편은 이미 내 곁을 떠나고 없었다. 남편과 함께 한 50년의 세월이 아들과 눈 장화를 신고 걸었던 25초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산통 끝에 만난 첫 아들을 떨리는 손으로 서툴게 받아 안았다. 그 순간 품 안에서 꼬물대던 여린 감촉이 너무나 황홀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태를 끊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 수줍음과 설레임으로 가슴을 열고 초유를 주기 위해 젖꼭지를 물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의 가슴에 생명의 젖샘이 있다는 것을. 눈을 감고도 유두를 찾아 빨아 대는 힘이 어찌나 센지 내 안의 모든 것이 빨려 나오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힘 새 생명과의 만남이로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아기가 첫돌을 지나면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나를 향해 첫발을 떼며 비틀거린다. 넘어질세라 얼른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킨다. 힘에 부쳤는지 엉덩이를 빼며 털썩 주저앉는다. 이번에는 조그만 발을 내 발등 위에 포개고 둘이 한 몸이 되어 걸음마를 한다. 그렇게 걸음마를 배운 아이는 어른이 되어 제 분야에서 제 몫을 다하고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못 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마음을 달래면서도 어쩐지 쓸쓸해지기도 한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천명(知天命)의 아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우리 모자는 25초라는 시간 안에서 다시 한 몸이 되어 눈 속을 걸었다. 첫 걸음마를 하면서 내 발등 위에 포개졌던 조그만 발이 아닌듬직하고 투박한 발. 아들과 함께 걸은 25초가 어찌 남편과 함께 지낸 반세기의 시간 16억 여 초에 비기랴.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에 남편을 보았고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나를 만났다. 힘이 빠져가는 내 회한의 얼굴 또한 만났다. 그래서인지 아들과 함께 눈 속을 걸은 25초의 걸음마는 내게 기쁨과 가슴 벅찬 감동으로 전율을 느끼게 했다. 요즘 들어 자주 찬바람이 어깨를 시리게 하고 뼛속까지 스며들어 한기를 느끼게 한다. 밤잠도 짧아졌다. 긴 밤을 벗삼아 나도 시 한 수를 읊어 보았다. 아들의 듬직하고 투박한 발로 눈을 다져 큼직한 눈장화를 만들었네 작아진 어미 발을 감싸안고 눈길 나들이를 함께 하였네 졸작인줄 알면서도 붓을 놓고 낙관을 공들여 찍었다. 내 서필에 찍힌 낙관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에게 각인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제 내가 바라보고 갈 곳은 단 한 곳뿐이다. 그 크신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 그 길의 종점에 다다를 때까지 향기롭게 살고 싶다. 눈이 녹고 새봄이 되면 들판에는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마치 내 아이들이 새 세상을 향한 꿈을 펼쳐 나가듯이. 수상 소감 "삶의 새로운 지평 열리는 계기" '중앙 신인 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뜻밖의 낭보에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국문학을 전공 했으면서도 글 쓰는데 인색했고 '문학상' 에 도전해 보겠다는 열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수필이 좋고 시가 좋아서 가리지 않고 읽으며 마음 내키면 습작 삼아 조금씩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고 있는 시애틀 형제실버대학에서 6년 동안 문학공부를 하면서 "글이 참 좋아요 계속 써보세요" 늘 따뜻하게 이끌어 주신 수필가 김학인 학장님 습작수필을 꼼꼼하게 지적하며 언제나 친절하게 조언해주신 수필가 김윤선 선생님 문학개론을 담당하고 동아리지도를 통해 많은 정보를 주신 시인 정혜영 선생님의 적극적인 격려에 힘입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앉으니 닫혔던 글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살아나는 의욕과 열정으로 긴장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인지도 높은 중앙일보 '문학상'에서 영광스럽게 수필부문 가작으로 당선된 것은 제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깊은 성찰로 백지 위에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쓰며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려 가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세 분 선생님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기쁨을 나눕니다. 이필순

2011-05-17

[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가작…보이지 않는 힘

코스코에서 산 설로인 스테이크 여섯덩이들이 한 팩을 슬겅슬겅 썰어 놓은 것이 한 동이였다. 지방도 꼼꼼히 떼고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을 꺼내는데 다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머리가 아파 한잠 자고 있는 동안 남편이 고기 먹고 싶어하는 마누라를 생각해 칼을 갈고 손질해 놓았을 것이다. 요리엔 젬병인 사람이니 그거면 해 줄 수 있는 거 다 해 준 셈이다. 그리고 아이들 데리고 저녁 약속에 나갔다. 같이 가면 고기 먹을 수 있는데… 라고 말했지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가더라도 민폐만 끼칠성 싶었다. 평시 육식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머리가 핑 돌고 귀가 먹먹해 지는 증세가 일면서 몸에서 '고기 좀 도~ 고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커다란 쇠고기팩을 덥썩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더니 남편이 작게 썰어야겠네라고 중얼거렸더랬다. 최근 서너 달여 동안 남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고집불통이라 여기고 나는 그를 혹처럼 대했다. 우리의 갈등… 시발은 작년에 수술로 제거했던 난소혹이 내 몸에서 다시 커다랗게 자라있다는 통고를 받은 이후부터였다. 수술 한 지 10개월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편은 다시 수술하자 하고 나는 뿌리를 뽑지 않은 채 혹만 제거한다면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고 말했다. 한방치료를 하겠다 하니 작년에도 그러는 동안 혹이 더 커졌지 않았느냐고 퉁박이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뒤통수를 한 번씩 맞았으니 미련이 남은 쪽을 택하겠노라 하자 이 고집불통의 여인을 어찌하겠느냐는 듯 남편이 돌아섰다. 그리고 집에선 다시 쑥 태운 내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쑥 연기는 진한 니코틴냄새와 비슷한데 특히 대마초 향과 흡사하다고 했다. 한방의학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서 화장실 문을 꼭꼭 닫고 초를 켜고 환풍기를 틀었지만 새어나오는 냄새를 어쩌지는 못했다. 현관문을 열면 눅눅하고 찌들은 담배냄새가 욕지기를 일으켜 누구라도 온다 하면 공기정화 스프레이를 사정없이 뿌려대 카펫바닥이 젖었다. 딸아이는 옷에 냄새가 밴다고 투덜대고 나는 손을 휘저을 때마다 담뱃진에 쩔은 사람처럼 고약한 냄새가 풍겨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부동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는 동안 나로선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교육마저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혹같이 여겨졌다. 게다가 남편은 몇 달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학기말에 몰려있던 아이들 행사에 코빼기도 비치지 못했는데 과부처럼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자니 지극히 행복하지 않았다. 별거중이거나 이혼한 사람들도 아이들 행사엔 부부가 나란히 출타하는 문화를 지닌 미국에서 사는 주제에 한국식을 들이밀다니… 그냥 아무렇지 않게 참석했다가 달랑 내 아이만 아빠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뒤통수를 심하게 맞은 듯 격한 울화가 치밀었다. 이후부터 나의 인내심은 유효기간을 넘긴 치즈처럼 보송보송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학위 받느라 5년 임시 직장에서 2년 이번엔 또 영구직 심사인가 뭔가가 있어서 남편은 진작부터 다시 하숙생으로 돌아갔다. 잘 버틴다고 생각했지만 속내 어딘가에서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불만이 꼬물거리고 있었던가 보다. 활화산처럼 자꾸 못된 성깔이 분화되었다. 하다못해 내가 깎아주지 않아 장발장처럼 덥수룩해진 남편의 머리를 보면서 안쓰럽기는커녕 나를 이발사로 부려왔던 그간의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 아니면 이발도 못해?'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미용실에 다녀왔는데 아뿔사 얼굴은 한국인인데 머리 모양은 멕시칸이 되어 나타났다. 그 모양이 극적으로 꼴 보기 싫어 마주치지 않으려고 좁은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한약 먹고 침 맞고 쑥뜸을 뜨고 그렇게 지낸 지 석 달하고 열흘. 동굴 속에서 마늘을 먹으며 견뎌왔던 웅녀의 100일 째 처럼 내 몸에도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원하면서 드디어 재검진을 위해 병원에 다녀왔다. 혼자 가겠다는 내 뾰로통한 얼굴을 뒤로한 채 남편이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무뚝뚝한 택시기사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사포질처럼 메마르게 훑고 지나가는 풍경에 자꾸 살갗을 에이듯 얼굴이 화끈댔다. 6년 만에 생긴 둘째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검진을 받으러 갈 때보다 더 긴장했는 지 모르겠다. "혹이 약간 커졌으니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꼬이거나 터질 가능성도 있어요." 의사는 총을 쏘듯 볼펜을 허공에 대고 흔들며 위협조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두웠다. 7월의 짱짱한 햇살 때문에 세상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여도 마음엔 어둑발이 깔렸다. 100일간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처럼 이제 겨우 불혹의 나이인 내가 상해버려서 더 이상 신선해지지 않을 거란 위기감이 밀려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고 나는 눈 밑이 떨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그렇게 깜깜해진 마음속에 들어앉아 몸을 옹송그린 채 나는 시들어 버린 것의 표상이 된다. 시든 젊음 시든 육체 시든 사랑… 그렇게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뺨에 따스한 느낌이 와닿았다. 남편의 투박한 손이었다. 땀이 났는 지 끈끈해진 손바닥이 곧 턱까지 두툴두툴 미끄러져 내렸다. "미안하다. 이쁘디 이쁜 연아가 나한테 와서 아프기만 하고…" 흠칫 놀라 바라 본 남편의 눈두덩이가 빨갰다. 순간 그를 향했던 내 눈길은 허둥지게 앞 유리창으로 돌아왔다. 오열이 터질 듯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그만 엉엉하고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에 심장이 터질듯 두근댔다. 사실 남편은 소문난 애처가이다. 그의 사랑은 초주지(草注紙)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할 줄 몰랐다. 그랬던 그의 마음에 대해 잠시 의구심을 품었던 나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들었었던가 보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 그 힘으로 나는 말도 마음도 낯설기만 한 이 땅에서 10여 년을 버텨왔고 오늘도 살아간다. "당신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간신히 거기까지 말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부족한 피를 채우고 심기일전해야 한다는 뭐랄까 삶의 의욕 같은 게 다시 꾸물대기 시작했다. 이대로 고약한 냄새를 피우며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썩은 단백질 덩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이지 않는 힘이 그렇게 응원했다. 그래서 코스코에 들러 커다란 쇠고기팩을 덥썩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더니 남편이 작게 썰어야겠네라고 중얼거렸더랬다. 수상 소감 "글 통해 마음의 양식 남기고 싶어" 슬픈 밤을 맞이하는 중입니다. 조금 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사촌 형부의 어이없는 부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제게 간곡히 부탁하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글 쓴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애들이나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라." 저는 지금 기쁘게 당선소감을 써야 하는데 멋지고 인상 깊게 써내야하는데 혼절할 만큼 괴로워하는 사촌언니를 생각하면서 뼈 마디마디에 고이는 슬픔을 느낍니다. 도저히 행복한 척 문장을 꾸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글은 바로 저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글은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어머니 걱정을 덜어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제 인생에서 떼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과 저의 글과 연이 닿은 모든 존재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소로우처럼 인간과 그 존재가치에 대한 글을 쓰며 이 세상에 마음의 양식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슬퍼하면서 너무 거창한 소감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삶의 최종 목표이므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용서하세요.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에 영광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김연아

2011-05-17

[중앙신인문학상] 심사평- 수필 부문…우열 가리기 힘든 수준작 통해 이민 문학 내일 기약

수필을 흔히 '붓 가는 대로 쓰는' 가벼운 문학장르로 인식하고 있지만 문학적 품격이 있는 좋은 수필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수필을 쓰는 이나 수필을 사랑하는 이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필은 제재 문체 형식에 대한 규제를 받지 않지만 그래도 일종의 내적 형식을 유지해야 하고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올바르게 정리되어야 하고 그 메시지를 전달할 제재와 형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편의 짧은 수필 속에는 글쓴이의 혼과 사유와 철학이 배어있어야 할 것이다. 이필순의 '25초간의 걸음마'는 아들과 함께 눈 속을 걸어가는 짧은 순간의 감회 속에 필자의 생애를 녹여 넣는 통찰력이 돋보였고 붓글씨라는 제재와 맞물려 작품을 승화시키는 기교가 흥미로웠지만 그 정서를 지나친 미문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작의가 거슬렸다. 김연아의 '보이지 않는 힘'은 일상의 잔잔한 소재를 여성특유의 감각으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독자가 쉽게 접근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품으로 승화시키기에 아쉬움이 있었고 일상의 정화되지 않은 표현들과 작품을 갈고 닦는 완성도에 거친 미완의 느낌을 주고 있다. 당선작으로 밀은 이종용씨의 '키리와 미코'는 좋은 수필의 전범을 보여준다. 강아지 미코가 새 주인을 찾아오는 모티프 미코가 가져온 살림살이에서 수십 년 전 낯선 가문에 시집을 간 누님의 혼수를 떠올리는 통찰력이 날카롭고 감동적이다. 유려한 문장의 흐름을 통하여 오늘의 경험을 과거의 기억과 치밀히 연결하여 망각될 수 있는 향토 민속사의 한 부분을 되살려내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몇 군데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나 말미에 사랑과 미움에 대한 결론이 사족처럼 거슬린다. 오히려 생략되었다면 독자의 상상력에 대한 여백으로 더 나은 효과를 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이버세상이 급속히 진화하면서 문학의 장래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현장 이민문학으로서의 생생한 체험을 짧은 장르 속에 담아내는 수필의 미래는 결코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 높은 우수한 작품들로 보아 수필에 대한 장밋빛 내일을 기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깝게 탈락하였지만 준결승 점에서 B+ 이상을 받은 분은 고옥 김마이카 김미현 김성민 박영애 박현숙 최용완 황시엽 황의문 그리고 테레사 황씨등으로 수필가로 문단에 추천해도 손색이 없는 분으로 판단된다. 심사위원/ 김호길.배정웅

2011-05-17

[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작…키리와 미코

키리와 미코는 자식들이 보낸 효도 대행자다 내 외로움을 덜어 주려는 그들의 배려이리라 어쨌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나에겐 작은 혁명이다 특히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고 미워해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까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었는데… 지난 1월 15일 치와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시집을 왔다. "저희 미코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코는 순종 치와와로 생일은 2008년 9월 13일. 이제 두 살이 되었군요. 미코라는 이름은 미스 코리아보다 더 예쁘다고 해서 붙여 준 이름입니다"로 시작된 편지는 장장 여섯 페이지에 걸쳐서 그의 성격 습관 식성 훈련 및 주의 사항 등을 예쁜 글씨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낸 이의 고운 마음씨가 손에 잡힐 듯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미코는 엄청난 혼수(?)를 가지고 왔다. 소위 크레이트라는 휴대용 개장 외에 서랍 네 개인 플라스틱 장농 휴식용 케이지 전기 난방 침대 요 이불들 일곱 개나 되는 옷 그 밖에 치약 칫솔 샴푸 귀 청소약 비타민제 냄새 제거약 발톱깎이 장난감들 그 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용품들이 채곡채곡 들어 있고 몇 달치의 개밥과 간식이 크고 작은 그릇에 가득 담겨져 왔다. 보낸 이는 이렇게 알뜰히 챙겨 보내면서 울었다는데…. 혹시라도 괴팍한 사람 만나서 학대나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편지 속에서 묻어난다. 행여 대소변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했다. 막내인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알뜰히 돌봐주던 내 작은 누님은 일제 말기에 시집을 갔다. 그 어렵던 시절 있는 것 없는 것 알뜰히 챙겨 보내며 어머니는 울었다. 제발 후덕한 집안 만나 귀염받으며 잘 살기를 빌었다. 그 시절 풍습대로 중매쟁이 말만 믿고 얼굴도 모르는 신랑과 서시모가 있는 집으로 장농과 이불짐과 함께 들어갔는데…. 얼마 후 결혼은 파경을 맞았고 장농과 이불짐은 되돌아 왔다. 그날도 해가 진 뒤에 짐꾼들이 들이닥친 모양인데 방문은 모두 열려 있고 썰렁한 대청 마루에 불은 환한데 어머니와 누나의 그 당혹스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어른들 눈치보기에 바빴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난처한 현장을 피해 어디로 피신이라도 하셨던 것일까? 그 후 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누님은 재혼을 했고 아들 딸 낳아 그런대로 행복하고 괜찮은 여생을 보냈지만 완고하신 부모님 앞에서는 항상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었다. 미코는 멋진 하늘색 코트를 입고 왔다. 대부분의 치와와처럼 누런 황토색인데 산뜻한 하늘색이 잘 어울렸다.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져서 몇 십 마일을 달려왔는데 마침 저녁이라 불이 환한 방 안에 크레이트를 갖다 놓기에 들여다보니 그 큰 눈에 불안과 공포를 가득 담은 채 저 구석으로 처박혀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문을 열어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억지로 끌어냈는데 벌벌 떨고 있다. 너무나 엉뚱한 환경이요 낯선 사람들뿐이다. '그래도 한두 번 안면이 있고 내 주인과 비슷한 이 사람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미코는 며늘아이 무릎에 옹크리고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들네 식구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 미코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다음날 그는 두 번이나 방안에서 뒤를 보는 무례를 범했지만 그 후로는 뒷문을 열어 주면 밖에 나가 용변하도록 습관화되었다. 우리 집에는 미코가 오기 전부터 키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막내 손자 녀석이 어디서 큰 쥐만한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왔는데 그것을 저희 부모가 설득하고 강권해서 '할아버지에게 드리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려서 주사기에 우유를 넣어서 먹였는데 적당히 눌러 주어 우유가 일정량 흘러내리도록 해 가면서 먹이는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새하얀 털에 간혹 검은 점과 갈색 털이 섞인 귀여운 모습의 이 놈은 탈 없이 잘 자라서 이젠 거의 다 큰 듯 싶다. "일주일만 키워 보세요. 정 싫으시면 그때 다시 가져갈게요." 마지못해 기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열 달이나 되었다. 고양이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짐승이라 별로 잔손이 가지 않는다. 주인을 알아보는 것은 분명한데 그 행동은 제멋대로다. 그 대신에 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않아서 편하다. 미코가 왔을 때 혹 키리와 싸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몸집으로 보면 키리는 미코의 두 배 가깝다. 거기다 고양이는 강력한 무기 즉 발톱이 있으니 이것으로 할퀴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미코는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에 다 붙임성이 좋아 며칠 사이에 잘 따르게 되었고 키리를 보면 꼬리를 치면서 가까이 다가가 놀자고 하지만 키리는 질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 도망치는 고양이를 보고 추격하지 않는 개가 있겠는가? 미코가 쫓아가면 키리는 비호같이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가 되돌아 본다. 그러나 미코의 짧은 다리와 점프력으로는 턱도 없는 게임이다. 키리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수줍다. 사실 키리는 암놈이고 미코는 수놈이다. 미코가 오고 처음 이삼 일 동안 키리는 어딘가에 숨어서 종일 나타나지도 않았었다. 키리는 명령을 무시하지만 미코는 꽤 많은 말을 알아듣는다. "이리와" "앉아" "엎드려" "물러나" "그만 해" "하지 마" 등을 영어로 명령하면 그대로 복종한다. 키리는 냉정한데 미코는 열정적이다. 내가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반가워서 온통 난리가 난다.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쾍- 쾍- 재채기 같은 소리를 내면서 미친듯이 앞발을 들고 기어오른다. 위로 안아 올리면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그럴 때면 내 손이 미코를 땅에 떨어뜨릴까봐 조심하게 된다. 키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좀 있으면 무심한 듯 옆으로 지나가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시킨다. 이제는 키리의 수줍음도 많이 없어져서 미코가 있는 근처에 주저 없이 나타나곤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이들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게 한다. 오랜 세월 언제나 내 곁에 있던 아내가 아주 멀리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외출했다가도 텅 빈 집에 들어섰을 때의 그 공허감 혼자 뒤뜰에 나가서 머리를 젖히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 흰 구름이 그렇게도 외로와 보이곤 했다. 키리와 미코는 자식들이 보낸 효도 대행자다. 내 외로움을 덜어 주려는 그들의 배려이리라. 어쨌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나에겐 작은 혁명이다. 특히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고 미워해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까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었는데…. 좋아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다. 먼지처럼 쌓여 있는 편견을 훌훌 털어버리면 누구라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나 사랑하리라. 특별히 가까이 있는 모든 것들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리라. 생각해 보면 사랑하기에도 이미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데 미워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수상 소감 "신인으로서의 설렘 간직한 채 정진할 것" 사춘기 시절 수많은 시들을 암송하고 다니면서,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에 좋은 책들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습작이랍시고 한 두 편 써 놓고, 또 쓰다 말고, 드려다 보니 내 생각에도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단념하고, 잊고 살았습니다. 책 권이나 있던 것들을 무슨 오기에선지 이민 올 때 단 한 권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문학에 대한 애착이 마음속에 잠복해 있었음을 느낍니다. 신인이란 말은 신랑이나 신부라는 말처럼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이 설렘을 간직한 채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이 미국 땅에서 한국 어문학을 키우고 가꾸는 큰 일들을 하시는 중앙일보 여러분과, 변변치 못한 글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이종용

20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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